Mission Field

선교 현장

한 알의 밀알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04-12 14:23
조회
102
작년 여름도 아제르바이잔은 예외없이 불판에 구워진 듯 불볕 더위가 계속되었다. 이쯤되면 시골에 전도와 심방을 가도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민폐가 될 수 있다. 절정을 달리던 더위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다가 현지인 목사 R에게 벼르고 벼르던 전화를 걸었다. R과 젊은 부부 S와 B 그리고 나 4명으로 구성된 전도팀이 M과 기타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 충성스럽고 열심있는 멤버들과 2박 3일의 첫 전도여행은 꽤 고무적이었다. 특히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찾아간 A라는 오지 마을에 사는 젊은 아이엄마 I의 하나님에 대한 목마른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다. 방문하는 가정마다 아이들에게 국제 P 단체에서 발송해온 선물들을 나눠주었다.

우리 사역을 거의 마무리할 시점에 도로변에서 헤이즐넛을 파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방도로 근처에 사는 아제르바이잔 아이들은 철따라 늘 무엇인가를 판다. 이번에는 조그만 봉지에 헤이즐넛을 들고 나왔다. 그 중에 한 아이와 한 청년이 따로 떨어져서 손님을 끌려고 애쓰고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 몇 개가 남았는지를 확인했다. 선물은 딱 두 개가 남아있었다. 그렇게 남은 선물 두 개는 L이라는 아이와 그의 친구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선물 박스만 얻은 게 아니었다. 어른이든 아이든 고속도로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유독히 강한 R이 얼마나 더 큰 선물을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준비하셨는지 전했다.

며칠 후 R은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다. "당신이 R이요?" "네, 그런데요."
낯선 사람: "당신이 우리 아이 L에게 며칠 전 고속도로에서 선물을 준 적이 있소?"
R 목사: "네?, 아···. 네, 맞습니다."
낯선 사람: "우리 아이가 죽었소. 선물을 받고 이틀 후 지나가는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오."
R 목사: "······"
낯선 사람: "당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한거요? 우리 아이에게······"
R 목사: "제가 무슨 말을 했다니요? 저는 그저······"

R 목사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난 이제 죽었군. 아이 죽은 원인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겠지. 예수 이야기를 해서 무슬림 아이에게 배교를 조장해서 죽게 되었다고'

낯선 사람: "우리 아이가 당신들이 준 선물을 받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얼마나 기쁜 얼굴로 우리에게 소리쳤는지 아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대. 엄마, 아빠! 여러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나와 내 친구에게만 선물을 주었어. 그리고 어떻게 기도하는지, 어떻게 하면 천국가는지 가르쳐 주었어." "우리는 그 아이가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오."
R 목사: "정말 마음이 아프군요. 하나님의 위로가······"

그 낯선 사람은 R의 말을 가로채며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낯선 사람: "우리 가족과 친척이 장례식 때문에 다 모였는데 당신이 도대체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길래 그 아이가 죽기 전에 그렇게 기뻐했는지 모두 다 궁금해하고 있소. 와서 그 아이에게 말한 것 그대로 우리 모두에게 전해줄 수 있겠소?"

다음 날 R은 죽은 아이 L의 집을 물어 물어 찾아갔다. 두렵고 떨렸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그것도 11세 된 어린 아이의 죽음을 두고 원통해하는 아이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들 앞에서 우리 주님에 대해 담대히 증거했다. L의 엄마는 "그런데 당신이 거룩한 책, 거룩한 책(성경) 자꾸 이야기하는데 그 거룩한 책 좀 갖다 주구려. 당신이 얘기한게 사실인지 좀 읽어봅시다."라고 말했다. L의 엄마 C는 전적으로 회심하게 되었고 온 가족의 마음도 복음에 활짝 열리게 되었다. C는 그 후 예수님 꿈을 여러 번 꾸었다. 그 꿈들 중 한 번은 L이 몇 명의 청년들과 함께 엄마에게 나타나서 말했다고 한다. "엄마, 엄마! 이 사람들 빵이 우리들이 먹는 빵보다 더 맛있어."

L이 죽은 후 1년 3개월이 흐른 이 글을 쓰는 지금, C는 곧 새 생명을 출산한다. L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고 그의 죽음을 한 알의 밀알로 쓰신 하나님은 C에게 새 생명을 잉태케 하셨다. 아내와 나는 아직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이 뱃속의 아이에게 '우므드(소망)'이라는 이름이 어떨지 제안해 보려 한다.

글 나자예

RUN지 87호(2019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