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삶으로 배우는 선교 - 시골밥상

작성자
WEC
작성일
2019-08-22 14:55
조회
1100

2004년, 1차 영입을 받고 지금까지 선교사역을 해오면서 아직도 선교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교 현장에서 있는 동안에도 가벼운 고민에서 심각한 고민들까지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신학적인 관점의 선교에 대한 것이 아닌 D종족이 사는 땅에서 제가 경험한 선교에 대해서 잠시 나누고 싶습니다.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2년의 신혼 같은 시간을 보내고 2008년 7월 말, 저희 가족은 사역지인 A지역으로 갔습니다. A지역에 도착한 첫날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숨이 탁 막히는 듯한 후덥지근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하는 날씨에 “ 여기서 어떻게 살지?” 했던 순간을 지금은 웃으며 떠올리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A지역에서의 저희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B선교사와 함께 소수민족이 사는 중심 지역과 시골 마을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매주 마을들을 방문할 때마다 저를 머뭇거리게 하고 주저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 시골밥상”이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있는 밥상들은 대부분 높이가 20cm 조금 더 되는 7~8인용의 둥근 모양입니다. 상 다리가 아주 낮습니다. 점심시간이 보통 2시간 정도 되는데, 앉아서 밥을 먹다 보면 다리가 저리고 아팠습니다. 엉덩이가 아파서 앉았다 일어났다 한 적도 많습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부엌에서 밥을 먹는데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밥을 짓기 때문에 벽면이 시꺼멓게 그을려 있습니다. 아궁이에서 나는 재 때문에 밥상에 있는 반찬들이 약간씩 시꺼멓습니다. 밭에서 기른 채소를 따서 기름을 많이 넣고 볶은 채소볶음, 이름 모르는 작은 민물 생선,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고 볶은 볶음국수, 그리고 식사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짙은 녹색의 기름차(油茶) 등등이 밥상에 올라옵니다. 처음에는 배탈도 나고 어느 날은 위가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맛있었고 지금은 그‘ 시골밥상’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매주 시골 마을을 방문했을 때마다 거의 같은‘ 메뉴’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밥을 먹고 싶지 않을 때에도 밥 먹고 가라며 부지런히 밥을 짓는 모습에 거절을 못 하고 먹곤 했습니다. 웃으며 환대해 주는 그들의 호의를 사양하기엔 너무 미안한 분위기입니다. 하여 마을에 들어갈 때마다 낯선 사람들이 저를 쳐다만 보아도 긴장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소수민족들이 사는 마을이나 시골에서는 점심 식사 시간이면 가족들만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일했던 그 마을의 이웃 혹은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한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식사를 일정 기간 하게 된다는 말은 그의 친척과 이웃을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C아저씨 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도 한 번 와서 식사하라며 초대하여, 그들과도 교제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 A지역의 믿음의 형제자매들 중에 많은 수가 제가 개인적으로 힘들어하고 불편해했던 그 ‘시골밥상’을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D족을 위한 선교란‘ 그들이 정성 들여 차려준 음식을 잘 먹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시골밥상 공동체’가‘ 말씀 공동체’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많은 감사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제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저의 부족함 때문에 잘못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복음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했는지를 항상 고민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제가 전하는 복음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 수도 있겠고,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저와 만나는 첫 만남의 순간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부담과 책임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모습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말로 선포하는 것뿐만 아니라 복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비자발적 출국으로 떠나오기까지 미전도 종족인 D족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먼저 받아 누린 빚진 자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들을 전혀 알지도 못했던 저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기름차(油茶)를 만들 때의“ 탁! 탁!” 소리가 그립고, 그들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나누었던 대화들이 기억나고, 음정 박자 다 틀리지만 힘껏 소리 높여 부르던 찬양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성경을 읽고 나눔의 시간에“ 나는 몰라, 정말 몰라”라는 말을 몇 년째 하지만 삶으로 믿음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셨던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눈에 선합니다. 제가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은 저에게 선교를 가르쳐 주었고, 선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고,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 당신들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구원하셨다”라는 바울의 선교적 정신과 사랑의 마음을 다시 새기며 복음의 빚진 자로서 제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wec

글 소금

RUN지 89호(2019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