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영적 전쟁 두려움의 굴레

작성자
WEC
작성일
2019-08-30 10:23
조회
1015

북코카서스의 C족은 오래전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전사들로 이름을 떨쳐왔다.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전장에서도 숨거나 물러서지 않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그들은 적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곤 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두려움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그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삶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두려움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족 사회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며 살아왔던 탓에 아주 배타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타민족과의 혼인도 금기시 여기며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가도 현지에 녹아들기보다는 자신들끼리 똘똘 뭉치곤 한다. 이런 끈끈한 사회적 구조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좋은 전통이기도 하지만, 모든 구성원을 속박하는 무서운 통제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그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규범을 벗어나는 일을 매우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슬람 신앙이 그리 투철하지 않으면서도 이웃을 두려워해서 기도하는 척, 라마단 금식을 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이 두려움은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반응하거나, 복음에 대해 알아보려는 궁금증조차 원천봉쇄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자신의 전부였던 사회에서 완전히 배척당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이들에게 죽음과 같은 두려움으로 다가와 많은 진지한 구도자들의 결단을 방해하고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주님께로 나아온 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극소수에 불과하다. 복음을 듣고 영접하고자 했던 사람 중에는 후에 자신의 결정의 의미를 깨닫고 전도자와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일도 있다.

민족 전체에 불과 몇십 명밖에 되지 않는 믿는 자들도 이 두려움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급격한 이슬람화는 그러잖아도 두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더욱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모이기를 두려워하고, 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모스크에 다니며 모든 이슬람 종교의식을 따라 행하다, 결국 믿음이 흔들리고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수도 상당하다. 이곳 현지 성도들에게 ‘민족 전도와 복음화’는 마치 가나안을 정탐했던 이스라엘의 10명의 정탐꾼이 느꼈던 ‘난공불락의 놋성벽’과 같다. “우리 민족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요.”라는 성도들의 한탄 속에서 사단이 주는 패배감과 무력감을 본다.

이 땅에 끊임없는 사단의 공격은 그 민족을 섬기는 사역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곳은 거친 들판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는 초기 개척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 퍽퍽한 개척지의 사역이라, 열매는 눈에 보이지 않고, 앞을 막아선 장벽은 너무 높아 보이고, 모스크로 몰려가는 사람들의 행렬과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이슬람화를 바라보면, 점점 무력감에 빠져든다. ‘과연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땅에도 교회가 설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몰려온다. 모든 문화와 배경의 사람들을 능히 바꿀 수 있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이 땅을 덮고 있는 두려움의 굴레에 함께 빠지게 된다. 현지의 성도들이 이 굴레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다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동일한 굴레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경험을 한다.

이 땅은 주의 백성들의 중보 기도가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하다. 이 땅의 성도들과 사역자들이 주님께서 주신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 가운데 거하며,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도록,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처럼 복음의 능력이 이 땅의 사람들을 묶고 있는 모든 두려움의 사슬을 깨고 자유케 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이를 위해 부르짖을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 있는가?

글 주영광

RUN지 89호(2019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