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마케도니아, 영적 현장에서 자신과의 싸움

작성자
WEC
작성일
2017-07-21 15:00
조회
1606

선교 현장에서 가장 힘든 영적 전쟁은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자 갈망하는 나를 다시 돌아보며 과연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역자인지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섭니다. 사역 현장에서 보내온 시간이 어느덧 13년이 지났습니다. 걸어온 발자국은 바람에 휘날려 사라져 버린 것도 있고 나를 주저앉아 울게 했던 깊게 파인 구덩이도 있습니다. 그렇게 걸어온 길이 후회가 없습니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바로 그의 사랑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13살에 선교사가 되고자 헌신하고 긴 시간의 훈련을 견디며 선교지에 들어오기를 간절하게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영혼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나 자신 때문에 울어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깊이 사랑하며 보듬었던 이들의 배신의 상처로 가슴 아파하며 울었습니다. 지난 세월 속에 겪었던 고통은 육신의 연약함을 남겨주었습니다. 여전히 내 삶에 일어나는 폭풍 속에서 주와 함께 잠잠히 머물고자 영적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페트병을 주어 생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이 있는 마을을 방문했었습니다. 그 후 온통 그곳 생각뿐이었습니다. 30여 개의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왜 내 마음이 빼앗겼을까? 아무도 방문한 흔적이 없는 곳, 교회들이나 선교사들 조차 전혀 오지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모두의 관심 밖의 버려진 것 같은 폐허로 찌든 환경 속에서 꿋꿋이 삶을 버텨내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바라보던 5~6세의 어린 아이들의 삼킬듯한 눈망울이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9~13세 연령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는 그들의 간곡한 부탁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집시 마을과의 인연의 즐거움도 잠시였습니다. 무허가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그곳에 세웠던 모임 장소도 허물어지게 되었습니다. 몇달 동안을 아이들을 교육할 장소를 찾았지만, 집시들을 위해 사용된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면서 결국 건물 얻는 것은 포기하였습니다. 이런 현실은 나를 위축되게 했습니다. 집집마다 심방을 하며 햇빛이 있을 때는 계단에서 아이들을 모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한 곳의 사무실을 빌려 청소년 몇몇을 제자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소가 좀 떨어져 있어서 그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다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도난사고가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어야할 한 아이가 오지 않아서 잠깐 데리러 간 사이에 일어난 것입니다. 차의 창문은 깨져있었고 가방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갑자기 주변이 무서워졌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겁도 없이 혼자 사역을 했구나! 그리고 홀로 있다는 인간적인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왜 마케도니아는 사역자들이 보내어지지 않는가? 이 사역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여러 가지 질문과 생각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나를 봅니다. 도난사고 후, 몇 달째 잃어버린 여권, 비자,카드 등을 재발급 받기 위해 서류들을 준비하며 이 모든 과정의 번거롭고 수고로움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기대치 않았던 사건들로 나를 흔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주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께서 함께할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들판에 봄이 오는데, 아직 찬바람이 불어 움츠러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옷깃을 세우며 찬바람이 몰려오는 주변을 바라봅니다. ‘저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아직 내게 남겨진 일들을 다하기까지 나를 흔드는 영적 세력에 맞서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합니다.

글 정한나 (마케도니아)
RUN지 80호(2017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