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사역 현장, 은혜로 서다

작성자
WEC
작성일
2018-03-20 14:44
조회
1588
우리 사역팀은 모두가 이곳 현지 병원에서 사역을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장•단기 사역자들은 젊은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지고 부르심이라는 한 소명 아래 모여있습니다. 한때는 일할 사역자가 없어서 엄청난 병원업무에 매달려 일만 해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 이렇게 많은 사역자를 보내주신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동시에 연합하여 사역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바쁜 금요일인지라 점심도 먹지 못하고 3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서야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병원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A도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업무가 가장 늦게 끝나기에 병원차를 타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오전 근무를 마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다 A와 함께 피자가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피자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자 얼마 전 세례를 받은 A가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말씀에 사랑하라 하셨는데 거듭난 크리스천으로서 내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거야?”

“어? 무슨 일이야 뭐 힘든 일 있어?” 우리 중 한명이 그런 질문을 한 이유를 묻자 A는 이것저것 하소연을 쏟아냈습니다. 내가 본국에서는 이런 일을 했었는데……, 왜 여기서는 이렇게 일을 하느냐……, 나를 초보자 취급을 한다……, 등등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문득 한 달 전 사역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미국인 남자 간호사가 떠올랐습니다. 그 역시 처음 왔을 때, 함께 청소하자는 말에 ‘왜 내가 청소를 해야 해?’라는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가장 더럽고 고집불통이었던 할아버지 환자를 목욕시키고 섬겨주었습니다. 가만히 A의 이야기를 듣다가 “우리가 과연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곳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참아주고 기다려야 할 기대 밖의 일이 많습니다. 어느 환자는 자기에게 인사를 안 했다고 약 단식 투쟁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어렵게 구한 약으로 치료받으며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한 환자는 비행기 표를 사놓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우리에게 딸 같다며 종 부리듯 하려는 환자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나이가 더 많은데도 말입니다. 아랍어로 열심히 설명하고 나면 못 알아들은 척, 옆 사람에게 “뭐래? 영어 말고 아랍어로 얘기하라고 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의사선생님 오실 테니까 방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하면 알았다고 대답하고 바로 밖으로 커피를 마시러 나가는 환자도 있습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입원한 엄마에게 맨발인 아이들이 추울까 봐 양말을 주었더니 가방에 양말을 챙겨 넣고 아이들은 여전히 맨발로 있는 것을 봅니다. 일 년에 약 250여 명의 환자들이 입원하고 퇴원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하소연하다 보면 끝도 없이 풀어 나올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긴 호흡을 내쉬며 참아야 하는 환자들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한 번은 유독 우리를 힘들게 하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와 부딪치고 싶지 않았고 인사를 하는 것조차 꺼려졌습니다. 그가 빨리 퇴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복도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껄렁껄렁한 그의 태도를 보니 순간 웃음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것이 너무 귀여운 아이의 투정같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그 역시 사랑하는 자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A와 함께 우리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날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죽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고백을 한 후, 푸념으로 시작한 긴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습니다. 금요일에는 동남아에서 온 근로자들로 북적이는 병원 부서에 A를 도와주러 갑니다. 특히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끼무나소 벵갈리?” “벵갈리 네이. 스리랑키” 자주 쓰는 벵골어를 외치며 나름 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
하지만, 이 역시 내게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글 유니스
RUN지 83호(2018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