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영적 현장, 관습의 굴레

작성자
WEC
작성일
2018-06-18 11:40
조회
1301

부활절을 앞두고 아침 특별기도회가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아침기도를 마치고 팀 미팅을 하기 전에 잠시 집에 다니러 간 남편이 사색이 되어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고, 어떡하냐! 아이고 어떡하냐!”를 되뇔 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의아해하고 있는 팀원들에게 입을 열어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옆집에 사는 68세 싱글남 후지와라 상과 정말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동차 백미러가 부서져 수리비를 많이 물었다며 역정을 냈고, 불과 일주일 전에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에 죄송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누나의 안부를 묻자, 그의 누나도 2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답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으로 알고 지낸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2년 반 사이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누나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일주일 전에 아가셨다는 소식은 저에게도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목조건물의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바로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과 또 그가 이러한 일들로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날들을 보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바둑 선생 후지와라 상은 늘 신경질적이고, 인사해도 안 받고, 너무나 까칠해서 못 본 척 지나쳐 버리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모님과 누나를 혼자서 떠나보내야 했던 것을 생각하니, 그의 까칠함과 무뚝뚝함도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일본 사회는 부자연스러울 만큼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깁니다. 그래서 가족 중 누가 아파도 이웃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남을 배려해야 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깁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현장에서 보여줬듯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질서를 지킵니다. 상대를 위해서 자신을 절제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면 자칫 이지메(왕따)를 당하기 쉽습니다. “예” “아니오”를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절제된 의사표현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그들의 혼네(본심)를 외국인인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겨우 읽을 수 있습니다.

계절별로 활발하게 벌어지는 마쯔리(축제)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신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어린이 축제에서부터 동네 축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의 커뮤니티가 신사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사는 교토는 전통적인 고장이라서 그런지 이러한 모습이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동네의 신사에서 행해지는 전통적인 마쯔리를 거부하는 것은 동네에서 왕따 당할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신사를 중심으로 한 축제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는 이곳에서 신앙을 지켜나가는 일은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의 지난 10년의 생활 동안 사단이 전통을 이어간다는 풍습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을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봐왔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마음을 어둡게 하여 우울과 절망에 빠지도록 하며, 그들의 전통,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만이 진리라고 믿게 합니다. 혹 자신의 습관과 전통에서 벗어나면 불행이 올 것 같은 두려움에 떨게 만듭니다. 사단은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신사를 통해서 거대하고 철옹성 같은 자신의 성읍을 이곳에 쌓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예수님을 증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어머니 합창단을 통해서 만난 친구들과 5년째 가스펠 찬양단을 하고 있는데, 그들 중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친구가 예수님을 만났고, 작년에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국어 교실로 모인 어머니 그룹, 초등학교 학부모 탁구 그룹, 어린이 영어교실 등 하나님은 다양한 그룹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교회 개척을 했지만 여전히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을 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이 구원을 얻는 과정에서 보냄을 받은 몇 번째 메신저인지 모르겠습니다. 열매를 보고자 하는 욕심을 내지 않고, 조급해 하지도 않으며, 온 마음을 다해 보내주신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주께 순종함으로 뿌린 복음의 씨앗을 주께서 친히 자라게 하시고, 모든 사단의 궤계로부터 지키실 것을 또한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사역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간절함에도 무반응인 사람들에 대하여, 고국의 가족들과 고향의 맛과 향기가 그리운 것에 대하여,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인격과 죄성, 무능함을 공격하는 사단의 참소에 대하여 말입니다.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감춰진 사단의 굴레가 드러나고 벗겨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전히 드러나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빛과 소금으로서의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글 이언미

RUN지 84호(2018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