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본부장 칼럼

Column of last directors

역대 본부장 칼럼

비둘기처럼 순결하여라

작성자
WEC
작성일
2011-11-24 23:40
조회
6669
- 최철희 -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비록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더욱 부쩍 교회들의 비리들, 목회자들의 심각한 문제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인터넷상에서 또는 뉴스를 통해 보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정말 한국교회의 좋은 모델로 지금까지 이름을 지켜왔던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부목사 간의 치고 받고 하는 싸움까지 벌어져서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어떤 모임에 가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일을 화제로 삼아서 교회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한 두 개의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만일 들추어낸다면 한국교회 거의 전부의 문제가 아닐까, 참으로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교회가 아무리 세속화 되었다고 해도 세상의 윤리와 도덕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세상의 윤리와 도덕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세인의 비난과 조롱과 법의 심판까지 받을 정도라고 한다면 교회는 이제 갈 데까지 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전에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크리스천, 목사님…하면 모두 진실한 사람들, 정직한 사람들, 존경 받을 사람들이라고 인식되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 가서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같이 어둡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아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기뻐하시는 교회들, 성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역삼동 큰 빌딩 뒤편에 있는 한 작은 교회, <창문교회>가 있습니다. 유목사님은 제가 다니던 교회의 부목사님이었습니다. 그분의 성경공부에 저는 빠짐없이 참석할 정도로 말씀에 깊은 이해와 영성을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주님께서 그에게 원하시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기존 교회에 다니고 있는 성도나, 등록해 본적이 있는 성도는 받아들이지 않고 전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새 신자만 교인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강남의 대형교회에서 오래 부목사로 사역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개척한다는 말을 듣고 많은 젊은이들이 목사님 교회로 오고자 했지만 목사님은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지금 개척교회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 혀를 찰 노릇입니다. 기존 성도들을 어떻게 하면 끌어올까 궁리해도 교회가 유지될까 말까 한 판국에 찾아온 교인까지 문전에서 그냥 보내다니!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금 9년째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는 송파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창문교회이면서도 창문이 하나도 없었어요. 목사님의 말씀은 그랬습니다. “선교사님, 선교지에서 선교사님들이 불신자인 한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듯이 저도 이곳에서 선교사의 마음으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10/40 윈도를 상징하며, 노아의 방주의 위로 뚫린 창문, 다니엘이 열어놓고 기도하던 창문의 의미하는 뜻으로 지은 <창문교회>의 사명을 다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신자들이 다 초신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새벽기도나, 주일저녁예배, 수요기도회에 출석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십일조는 물론 주일 헌금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무도 함께 하지 않는 빈 예배실에서 오직 사모님과 단 둘이서만 예배를 드리는 일이 보통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7년 동안 1천 만원을 모아 아프리카 어느 선교지에 교회당 건축을 위해 헌금을 보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 정결한 예물이었을 것입니다. 유목사님은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늘 초점을 맞추시기 때문에 그의 영혼은 언제 만나도 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님과 대화하는 그의 기도 시간마다 마치 깨끗한 샘물과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을 유 목사님을 생각하면 그의 기쁨이 물결처럼 저의 심령에도 와 닿곤 했습니다.

 

선교지에서 돌아와 우리 부부는 몇 달에 한 번씩 그 교회를 방문합니다. 성도는 여전히 20-30명 정도이지만 그곳에서 복음을 깨닫고 다른 교회로 간 사람들까지 한다면 100명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그 교회는 사실 교인의 숫자는 무의미합니다. 목사님의 머리 속에는 수의 개념이 지워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9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초심을 유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루는 다른 교회 집사님이 한 분 오셨습니다. 남편이 불신자이니 그를 전도하기까지 이 교회를 다니게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목사님은 많은 지인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혹시 기존 신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자신의 고집 때문이라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을 조건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고백은 그 이후 자신에게서 기쁨이 사라지고 목회하고 싶은 의욕마저도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성령의 슬픔이 그의 가슴에 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다시 처음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되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유 목사님은 자신의 목회가 결코 보편적으로 모든 목회자들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에게 주신 특별한 주님의 요구였습니다. 그에게 그와 같은 목회를 원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생각해 봅니다. 그는 먼저 주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만 감당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숫자를 자랑하며 세상 논리에 맞춰 대형화, 기업화 되어가는 한국교회들 속에서 하나의 특별한 샘플을 만들고 싶은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는 마치 소리 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습니다. 아무 사람의 눈에 띄지도 않게 몰래, 그러나 계속 쉼 없이 솟아나는 봉한 샘물 같다고 여겨집니다.

WEC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특별한 요구가 있습니다. 믿음, 거룩, 희생, 교제…그러한 WEC에 주신 소중한 실천 원리는 우리가 감당할 내면의 힘이 있기 때문에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지켜나갈 때 혼탁해진 오늘의 현실에서 맑은 물을 흘려 보낼 수 있을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인 줄 압니다. 우리가 WEC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그래도 비교적 순수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수>할 것을 권면하고 계십니다. 자기 욕심을 따르며, 자기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며, 자신이 영광을 취하려고 할 때 우리의 모습은 <순결>을 잃어버리게 되고, 어두워지고, 더럽혀지게 됩니다. 저는 본부장직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길을 따라가려고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슨 큰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어떻게 하면 순수하게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일은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에 저는 심부름꾼으로 쓰임을 받음을 기뻐할 뿐입니다. 심부름하는 사람이 “내가 무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잘 못된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길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자기 욕심, 이기심, 명예심, 공로의식, 자기성취, 자기영광에 휘말려 들지 말고 주님 앞에서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종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