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본부장 칼럼

Column of last directors

역대 본부장 칼럼

헌신의 길

작성자
WEC
작성일
2011-11-23 17:08
조회
4817
글쓴이 : 유병국
Date : 2007-06-17


헌신의 길


유치원에 들어 갈 나이에 부모를 따라 선교지에 들어가 자란 우리 둘째 달, 학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의 나이 12살이 되던 때 우리는 그 아이를 멀리 멀리 보내야 했습니다. 멀리 가 있는 딸들이 그리워 울다가 울다가 수년 만에 마침내 기회가 되어 아이들을 만나지요. 꿈같은 시간들, 그러나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그 시간들이 그렇게 야속 했었습니다. 헤어지기 수일 전부터 큰 딸은 배가 아프다며 식음을 전폐하다 시피 했답니다. 그리고 배를 잡고 데굴 데굴 구르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아이 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고 그 어린 아이의 위 내시경 검사를 두 번이나 했을까요. 알고 보니 큰 딸은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힘이 들어 그런 감정이 그렇게 배가 아픈 것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우리의 둘째 딸은 그런 시간이 오면 혼자서 코 노래를 부르곤 했답니다. 이상하리만치 침착해지는 아이가 의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져야 하는 공항 대합실 속에서 말없이 쏟아내렸던 눈물을 보인 것이 그 아이가 표현한 이별의 슬픔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둘째 딸이 어른보다 강하고 참을성이 많다며 자랑하곤 했었지요. 이제 와서 안 일이지만 둘째는 제 언니가 엄마 아빠와 헤어질 때만 되면 저렇게 나뒹굴어야 할 정도로 힘이 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자기만이라도 침착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 놓고 울다가 다시 노래하면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속이 깊었던 우리 둘째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둘째가 지금 아픕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애정 결핍증이라는 병 때문에 말입니다. 이 모든 인내에 한계가 온 것입니다. 먹는 것도 싫다고 합니다. 몸은 마른 가지처럼 야위어 갑니다. 놀라서 달려 온 우리 보고 그 딸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자기의 마음을 쏟아 냅니다. 너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부터 말없이 속으로 쌓고 쌓았던 한을 저렇게 쏟아냅니다. 이제는 이렇게 쏟아내기에 충분히 성장한 자신이 되었기에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어린 자기를 그렇게 멀리 보내는 부모를 보면서 자기는 늘 버림을 받은 자식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특히 지난 해 알 수 없는 심장의 심한 통증과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던 허리 통증으로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그 적적한 방, 어두움의 터널을 혼자서 지나 올 때에도 엄마 아빠는 선교 일 한다며 자기를 찾아와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일어 설 수도 없을 지도, 이대로 심장이 멈춰서 숨이 끊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기도조차 할 수 없는 그 길고도 어려웠던 어두움의 터널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을 때도 그렇게 간절했던 엄마 아빠는 자기 곁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삶이고, 아무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내가 지고가야 하는 십자가라고 어린 나이에 감히 생각하며 참았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엄마 아빠가 내 곁에 있어 주실까. 내가 약이라도 먹고 자살이라도 시도하면 오실까? 아니면 중병에라도 걸려 병상에 누워 있게라도 되면 오시려나.... 그런 생각으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엄마 아빠가 어느 선교지 선교사 가정에 문제가 생겼다며 부랴부랴 비자를 신청하고, 만사를 제쳐 놓고 방문 일정을 조정하고 계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딸아이의 절망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저분들은 내 부모가 아니다” 라고 단정을 짓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딸은 급기야 정서적 좌절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귀찮아 지고 먹는 것조차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뒤 늦게 알게 된 우리 못난 부모는 가련한 딸 곁에 마주 앉아 말없이 눈물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딸은 너무도 냉냉합니다. 우리의 이런 태도들이 너무도 가식 같이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진정 그렇다면 이제라도 자기를 떠나지 않고 같이 있어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기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부모임을 확증시켜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딸을 두고 다시 우리의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루가 이렇게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예전에 미쳐 느껴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가 지나는 것이 이렇게 무서움으로 다가 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누구든지 아들이나 딸을 나 보다 더 중히 여기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이 말씀을 밤을 새우며 되 내이고 해 보지만 밀려오는 답답함을 메울 길이 없습니다.


오늘도 외로운 선교지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멀리 보내 놓고 힘들어 하는 부모님 여러분,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는 아이들을 공부 때문에 멀리 보내야 할 현실 앞에서 고민하시는 여러분, 이제는 아이들을 다 키웠다며 아이들 문제에서 벗어났다고 으쓱해 하고 있던 우리의 현실이 겨우 여기입니다. 선교사의 길을 가기로 헌신한 우리들이 피할 수 없이 넘어야 할 고난의 길이라고 말은 하지만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헌신이 요구되네요. 이제 두 어 밤을 더 자고 나면 저렇게 힘들어 육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이미 깊이 병든 아이들 남겨 놓고 우리는 가야 하네요. “주님 이제껏 지켜 주신 그 방법대로 다시 이 아이를 당신께 올려 드리고 저희는 가겠습니다. 도와주세요. 돌 봐 주세요.” 그렇게 말씀드리고 가야 합니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수근 거린다고 하네요. “뭐 저런 무책임한 부모들이 다 있남, 저런 딸을 두고 다시 간다니?” 라며 말입니다. 딸아, 미안하다. 사랑하는 우리 둘째 딸아 정말 미안하다. 너를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다. 금지옥엽 내 딸아. 일어나라. 믿음으로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주를 향한 우리의 헌신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일어나자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