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일상을 흔드는 영적 세력

작성자
WEC
작성일
2018-11-06 15:21
조회
1175
매일 아침에 있는 기도회에 푸석한 얼굴로 참석한 R자매의 얼굴을 보니 지난밤에도 잠을 제대로 못 이룬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다 지나도록 R은 거의 매일 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도 없고,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는 말에 함께 기도를 시작했다. R이 우리 팀과 함께 일하기로 결심한 것은 몇 달 전 이곳을 방문해서 어린아이들과 십대 학생들과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 후였다. 본국으로 귀국한 자매는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고 장기 사역자로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돌아온 것이다. 기도회를 마치고 자매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못 살 것 같다는 것이었다. 결국 R은 짐을 꾸려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소톤 절에서 시작되는 탁발승들의 행렬이 온 시내를 향해 이어진다. 길가에는 탁발승들을 향해 시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어린 탁발승 앞에 무릎을 꿇고 음식을 건네주며 복을 빌어주기를 기다린다. 향을 피운 연기로 가득한 뿌연 분위기가 아침마다 온 도시를 감싼다. 이곳에서 팀을 통해 교회 개척을 시작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복음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적다. 차로 반 시간 정도 떨어진 방빠꽁 지역이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든 것에 비하면 이곳은 복음의 불모지처럼 느껴진다. 기도회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팀원들에게 많은 은혜를 주신다. 아침 기도회는 마치 깊은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긷는 것처럼 영적으로 소성케 하는 힘이 있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일상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직 믿음으로만 걸어야 하는 각박한 현실을 만나게 된다.

쿤나는 회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과감히 자신의 종교를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중에 전도를 받고 교회와 연결되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남편 베이스는 아버지가 미국에서 교회를 다닌다고 하며 함께 교회를 찾았다.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와서 모든 것이 낯설 텐데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말씀 안에서 조금씩 자라가는 부부를 보면 참 감사했다. 이제 개척된 교회에서 누군가가 믿음을 가지고 서서히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부부가 아직 말씀에 깊이 자라기도 전에 가정에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맘에 들지 않는 습관들에 대해 화가 난 쿤나는 남편을 뒤로하고 너무도 쉽게 다른 남자를 향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심방하고 셀 그룹 성경공부로 모이며 권면해 보았지만 쿤나의 행동을 제지할 어떤 최소한의 방어막도 제공하지 못했다. 부부의 서약과 신의를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곳 동네의 분위기에 젖어 살아온 쿤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깊은 자리까지 도달하는 것이 어려웠다.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적인 관습들이 제공하는 최소한의 보호가 사라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우선한다. 이러한 역기능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아주 쉽게 윤리적인 삶의 태도를 벗어 버리고 눈앞에 현실을 따라 살아간다. 그 안에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혼합되어 자신을 속박하고 제어하려는 모든 것을 거부하려 한다.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종교를 선택하고, 남편을 선택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한다. 사람의 방법이나 지혜로는 이러한 사람들의 삶에 다가가 변화와 회복의 자리까지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숨 막히게 하는 늪과 같은 세계관을 직면할 때면 오직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어 일하도록 세우시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들을 향해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리라. 이 민족을 위해 기꺼이 썩어지는 씨앗이 되려는 사람들을 통해 주님은 생명이 생명을 낳게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실 것이다.

글 유치송

RUN지 86호(2018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