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Somebody에서 Nobody로

작성자
WEC
작성일
2012-02-29 17:04
조회
5440
Somebody에서 Nobody로


1999년 11월 11일 뉴질랜드 MTC에서 선교훈련을 받기위해 온 가족이 뉴질랜드를 향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어느 나라일지는 모르나 MTC를 마치면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한 나라를 택하여 사역지로 삼고 그 나라에 가는 것처럼 저희 가족도 그 어느 나라인가를 기대하며 이곳 MTC(East-west College of Intercultural Studies)에 도착하여 훈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이곳에 있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마도 2년의 훈련 기간으로는 저희들에게 너무 짧아 더 훈련을 받으라는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이곳 뉴질랜드 MTC에 있으면서 훈련을 받으러 오는 많은 선교사들을 만나게 되고 또 이곳에서 훈련 받은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사역하는 소식을 들으며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지 볼 수 있는 것은 저희에게 주어진 특권이라 생각됩니다.


그 사역 현장에 나아가기까지 거쳐야 될 많은 과정이 있겠지만 그 중에도 MTC훈련이야말로 어찌 보면 선교사로 쓰임 받기 까지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또 가장 기억에 남는 기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많은 선교사들과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어떻게 훈련되고 하나님이 어떻게 이끄시는지 함께 겪으며 생활하는 것은 분명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제가 강의를 맡고 있는 과목 중 모세오경 에서 볼 수 있는 모세의 삶과 너무나 흡사하여 강의를 할 때마다 나누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모세는 120세에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서로 전혀 다른 환경과 영역에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첫 번째 40년이 애굽 왕궁에서 왕자로서의 삶이고, 그 다음 40년은 미디안에서 목동으로서의 삶이었고, 마지막 40년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삶이었습니다.


첫 번째 애굽에서의 40년간 그는 자신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아마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을 것 같습니다(thinking he was somebody).  그 40년간 그는 애굽 공주의 아들로 살았고 (출 2:10),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일들이 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행 7:22).  그러나 그 후 미디안에서의 40년간은 그와 정 반대로 자신의 작음을 배우며 (learning he was nobody) 좌절과 한숨의 삶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오죽하면 아들 이름을 ‘타국에서 객이 된 자’ 라는 뜻의 ‘게르솜’이라 불렀겠습니까 (출 2:22).


제가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리 선교사님들의 선교사가 되어 가는 과정이 이와 매우 유사한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모세가 처음 40년간 자신을 Somebody라고 생각하며 생활했던 것처럼, 선교사로 헌신하여 MTC에 올 때에는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열정과 자신감을 가지고 뉴질랜드에 도착합니다. ‘하나님 저는 선교사로 남은 생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라도 복음 들고 가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현지인들을 사랑하며 섬기겠습니다. 저의 헌신을 받아 주세요!’ 사실 사회적으로도 교사, 목사, 의사, 간호사, 기술자 등등 모세에 버금가는 위치에서 생활했던 분들이 대부분이고, 자신을 Somebody라 생각하며 흥분과 열정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그 자신감도 잠시, 뉴질랜드 공항에 도착하여 희한한 변방의 영어, 뉴질랜드식 영어 발음을 듣는 순간부터 기가 죽기 시작합니다.


MTC 생활 중 영어로 인해 일어났던 이야기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실습 (Practical work) 시간에 사다리를 가져오라는 말을 잘못 알아들어 망치를 들고 갔다던 어느 선교사의 고백, 저녁 식사 준비 중에 식재료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말을 잘못 알아들어 쓰레기통에 버린 사건. 재봉질 중에 벤치 위에 있는 가위를 가져오라는 말을 듣고 집 밖으로 가위 찾아 나갔던 사연. 남편이 ‘쓰레기 당번(’Rubbish duty)중’에 있다고 설명한다는 것을 My husband is rubbish라고 하여 남편을 졸지에 rubbish로 만들었던 사연. 수업 중엔 왜 그리도 조별 과제가 많은지….나이 40이 넘어도 영어가 안 되니 20대 초반 영어 잘하는 팀 리더에게 의견 반영 제대로 한번 못하고 그저 따라만 다녀야만 했던 설움. 영어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듣는 것, 말하는 것이 어눌하니 사람들은 어린애 취급을 하고, 쌓이는 서러움과 분통을 어디 풀데 없으니 학교 내 높이자란 옥수수 밭에 들어가 한참을 흐느끼다 나왔다던 사연 등등. 영어 하나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 자부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거기다 교육 중이라고 후원도 제대로 못 받는데 전셋돈 빼서 가지고 온 돈은 왜 그리도 빨리 떨어지는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내시는 곳의 사람들을 품겠다고 헌신 할 때가 엊그젠데 함께 훈련 받는 동료 선교사들 하나 사랑하지 못하고 사이가 벌어져 말도 안 하고 지내는 일도 발생하니 도대체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자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 지경까지 가면 결국에는 ‘하나님 왜 나를 어기 보내셨나요?’ 하며 하나님께 화풀이를 시작하게 되고, 과연 내가 선교지에 가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하며 좌절을 느끼기 시작하는 곳.  그런 좌절 가운데 결국 나는 Somebody가 아니라 Nobody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미디안 땅, 그곳이 바로 MTC 입니다.


그러나 물론 좌절하기에는 너무 이르지요. 왜냐하면 모세에게 미디안을 떠나 마지막 40년이 있었듯이 우리도 영원히 미디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40년은 하나님께서 Nobody를 통해 어떤 일들을 하실 수 있는가를 발견해가던 기간 이었습니다 (discovering what God can do with a nobody).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출 14:13-14)” 라고 외치던 모세의 모습을 보십시오.  홍해를 향하여 외치던 모세는 여전히 Nobody였습니다.  마라의 샘물에 나뭇 가지를 던지던 모세, 므리바에서 반석을 쳐 물이 나오게 하던 모세,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중보하던 모세,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던 모세….그는 여전히 Nobody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Nobody를 통해 많은 이적을 행하시며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셨고 모세는 그렇게 자신을 통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많은 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MTC라는 미디안에서 훈련 받으며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며 눈물 흘리던 선교사님들이 각자의 임지에서 그들을 통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보며 감사하는 모습을 봅니다. 부족한 우리들을 택하여 그분의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 MTC는 바로 그분의 계획 가운데 우리를 낮추시는 과정인가 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MTC에서 눈물 흘리며 훈련 받고 있지만 그분의 계획 가운데 우리 자신을 맡기며 Nobody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MTC에 계시는 분들 힘내세요! 그리고 MTC에 오실 분들, 두손들어 환영합니다.


이 선교사


- RUN지 58호(2011년 10,11,12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