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주님의 미쁘심으로

작성자
WEC
작성일
2012-03-13 17:57
조회
5463
주님의 미쁘심으로


 중2무렵,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의료선교사’라고 적어 넣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교사가 뭔지도 모르면서 막연한 꿈을 꿨던 그 철부지에게 풋소원을 심어주셨던 주님, 그의 신실하심이 얼만큼이나 큰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지…?

선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확신이 없어 간절히 구하던 대학시절 어느 겨울의 끝, 스물 세 번째 생일, 디모데후서 2장 말씀으로 그 부르심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이왕이면 폼 나는 금 그릇이 되고 싶었던 숨겨진 욕심과,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케 해 주셨습니다. 질그릇만 되어도 쓰시는 분이 주님이시고, 또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깨끗한’ 그릇으로 주인의 손에 ‘드려지기만 한다면’, 귀히 쓰는 그릇되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될 것이라 약속해주셨습니다. 화려하고 폼 나서 스스로는 만족스럽더라도, 정작 주인은 맘 편하게 못쓰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모양은 초라해도 그 분이 즐겨 쓰시는 합당한 그릇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생애 최고의 생일선물로 기억되는 그 겨울의 부르심은, 10여 년간의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허황된 것 같아 포기하고도 싶고, 혹은 무거운 짐 같아 벗어버리고 싶은 수 많은 유혹과 변덕 속에서도, 저를 견고히 붙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전공의 수련이 끝나가던 3년여 전, 항상 “언제?”일 뿐이었던, 선교지로 떠날 그 날이 이제 드디어 “곧”이 되리란 긴장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교지와 선교단체를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우연찮게 만난 한 선교사님에 의해, 그 동안 선교단체들을 탐색(?)하면서도, 무심히 지나쳐왔던 WEC에 대해 처음 자세히 들었습니다. 제게 잘 맞는 단체일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고, 때마침 WEC호남지부 창립소식을 듣게 되었지요. WEC에 대한 인도하심을 설레는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을 때, 당시 안식년으로 나와있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동안 미지수로 남아 있었던, 선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결정들, 결혼, 선교단체, 선교지 등에 대한 결정이, 예상을 뛰어넘어 한 순간에 다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던 만큼, 그로 인해 치른 대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른 해 넘게 터를 굳히고 있었던 고향, 모 교회, 일터, 그리고 가족들을 떠나는 것, 완강하게 반대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부모님처럼 아껴주시던 교수님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마음 아프게 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쟁기를 잡고 자꾸 뒤돌아 보고 싶게 만드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이 길이 주님 따르는 길이라면 반드시 가고 싶단 소원은 확실했고, 실수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주셨던 약속처럼, 확실히 의지할 분, 그 하나님께서, “주를 의지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게(삼하 22:30)” 하셨습니다.


 뉴질랜드 MTC, CO 훈련기간에도 그러했습니다. 내 자신을 보면 ‘할 수 없다.’ 말할 수밖에 없는 일들 앞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기대조차 못하는 연약한 믿음의 내 자신에 대해 절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으므로, 하라고 하신 만큼만 순종해 ‘돌을 굴렸을 때’(요11), 주님께서 행하시고, 그 분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훈련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이 최선이며 최고인지 판단할 수 없는 어리석은 자였지만, 그저 주님 뜻이라고 믿어지는 것들에 순종했을 뿐이었는데, 뒤돌아 보면 결국은, 언제나 최선으로, 최고로 인도하셨음을 깨닫고 전율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사실 하나는, 여기까지 내 안에 그럴만한 견고함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믿음, 그 소원, 그 헌신을 붙드셨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로서는 안 된다는, 그러나 주님이면 된다는 확실한 결론을 붙잡고, 질그릇도 못 되는 자 안에 보화를 담기 기뻐하시는 주님의 미쁘심으로, 여기까지 이끄신 주님께서 또한 친히 그 분의 일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살전 5:24), 첫 발걸음을 뗍니다.


돌 선교사

- RUN지 58호(2011년 10,11,12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