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주가 ‘있으라’ 하는 곳에

작성자
WEC
작성일
2012-02-29 16:20
조회
4663
주가 ‘있으라’ 하는 곳에


태풍 무이파가 인천대교를 건너가는 자동차를 마구 흔들었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짐을 끌고 다시 집으로 올 수는 없는 일이어서 ‘공항에서 자리라’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가방과 함께 도로에서 사는 인생, 공항인들 못 잘까…’ 다행히도 비행기는 십분 연착한 후 폭우를 가르며 떴다. 구름 위에는 비와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는 해가 눈부셨다. 아이가 딸린 엄마에게 주는, 이코노믹 석에서는 제법 넓은 세 좌석을 얻어 다리가 아파올 즈음에 바닥에 담요를 펴고 누웠다. 이런 일이 수술 후 긴 여행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위원회로 모였을 때 인공관절 수술하러 3개월 말미로 한국에 간다고 하자 미국인 존은 “글쎄?” 했고, 뉴질랜드인 카렌은 “우린 발가락 수술만 해도 6개월 비행기 안 태우는데…” 했었다. 모두의 우려를 묵살하고 “한국은 이 수술의 전문가가 많아”하며 늦어도 4개월이면 돌아오리라 했던 체류가 다섯 달이 훌쩍 넘어버렸다.


떠나는 아침까지 일이 있어 노모와 제대로 작별할 시간도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전화를 받다가, 눈물 지으시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빗속에 바삐 집을 나섰는데 비행기에서 여유가 생기니 어머니 생각이 났다. 예전 같지 않게 병석에 계시던 어머니는 꽉 쥐면 부서질 것 같은 노구를 일으키셔서 이번에도 나를 기꺼이 선교지로 보내 주셨다. 어쩌면 생전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 나는 마음을 다그치고 눈물을 참았다. 이 다음 내가 만약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있다면 그것은 전부 어머니의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가사를 생각하니 마치 나의 간증인 것 같다. 비행하는 내내 이 찬송을 되뇌면서 다시 선교지로 돌아왔다. 지지고 볶으며 더위를 견딘 좁은 서울의 집과 비교될 만큼 이곳의 집은 넓고 썰렁하기 그지없다. 여름에는 드물게 비가 오는데 태풍의 자락을 몰고 온 양, 이 건기에 비까지 내린다. 커다란 외로움이 자리를 잡으려고 한다. 내게 힐끔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을 보니 다시 이방의 땅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도대체 무엇 하러 이곳에 왔단 말인가?’ ‘내가 한 바가지 덜어낸들 저 바닷물이 줄어들 것이며 내가 한 바가지 퍼부은들 바닷물이 늘어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 질문들은 내 안에 슬며시 불신앙으로 자리잡고 들어왔다는 증거다. 어깨를 짓누르는 우울함을 털어낸다. 이럴 땐 청소가 제일이다.


마음을 추스르며 며칠을 걸려 싼 짐을 다시 풀고 집 정리를 하노라니 수술한 다리와 약해진 허리가 몹시 아파왔다. 진작부터 희어진 머리는 그렇다 치고 정형외과에서 허리 아픔을 호소하니 퇴행성이라고 한다. 이제 사역만큼이나 중요성을 부여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의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럼, 공항 문 지날 때 삐~ 소리가 나는 거야?” 한 동료가 농담한 대로 정말 입국 통과를 할 때 소리가 났다. 혹시 하고 주머니를 뒤집었지만 쇳소리를 나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관리에게 관절에서 소리가 나는 모양이라고 했더니 모두가 웃고 만다.


비워둔 집에 잠깐 머물다 간 동료가 남겨둔 물건들과 양식들, 이웃에 사는 동료가 갖다 준 오이소박이와 멸치볶음이 텅 빈 냉장고보다 더 빈 내 가슴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으로 와 닿는다. 라마단 기간이어서 이웃들은 하루 종일 금식하고 자기 친인척들과 성찬을 나누어서 심심한 저녁, 동료로부터 환영하는 전화가 왔다. 아, 그 목소리가 눈물 나게 반가웠다. 오래 사역한 동료들이 거의 떠나고 남은 사람들도 아이들의 방학 중 고국 방문에 휴가에, 그야말로 텅 빈 듯한 도시에서 같은 길을 가는 동료는 마음 다해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이란 걸 깨닫는다.
나의 귀환을 기다리고 기뻐해 주는 현지인 신자들과 방문 약속을 하고 나자 비로소 있어야 할 자리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계속되는 어머니의 병환에 돌아 올 날짜를 잡아 놓고도 마음을 결정 못하고 슬며시 주저앉고 싶어지던 어느 주일 설교 시간에 메시지와 문맥과는 상관없는 목사님의 일갈, “네가 어찌하여 이곳에 있느냐” 마음에 비수같이 꽂힌 이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혼돈과 갈등 속에서 주신 주님의 한 말씀이 다시 힘이 되어서 이 길을 갈 수 있게 해 주신다.


있어도 없어도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없이는 결코 안 되는 일들을 하기 위하여, 새 마음과 새 비전을 간구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을 충실히 하며 매일의 묵상과 라마잔 기간에 이들의 구원을 위한 계시와 또 넘어질 때 붙들어 줄 동역자를 위해, 어린 신자들과 팀의 새 동료들을 보듬어 안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견고히 하기 위해 걸어가는 이 길을 처음 부르심의 때처럼 열정을 가지고 변함없이 가게 되기를 바란다.


토요일 아침 노모께 전화를 드려 그간의 상황을 알려 드렸다. 언제나 하시는 말씀은 “너무 무리 말고 건강 잘 챙겨라”이다. 이번에는 덧붙여 “쌀은 팔았나?” 하신다. 한 발짝만 나가면 슈퍼마켓이 있고 쌀은 늘 살수 있는데도. 당신 몸이 불편해서 수술 후에 보양식 한번 못 해 줬다고 아쉬워하시더니만... 그저 어머니만큼의 마음을 갖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지.


비가 그치고 눈부신 햇살이 동창으로 환히 들어온다. 빛을 받고 적절한 물 만으로도 제 구실을 다하는 화초들, 아무도 바라 봐 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는 잎사귀의 초록빛에 황홀해 하면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아니 그 나라로 부르심을 받는 날까지 ‘있으라’하시는 곳을 지키며 살고 싶다.


장 선교사(T국)


- RUN지 58호(2011년 10,11,12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