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툶과 낯섦으로 대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막 두 달이 넘어갑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쉴틈 없이 밀려오는 다양한 상황을 맞이하며, 여전히 거대하게 느껴지는 한국본부의 일이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결정으로 많은 중차대한 일들이 생겨나고, 그 결과를 오롯이 짊어져야 한다는 중압감, 그리고 혹여 우리의 부족함으로 한국WEC에 누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우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 자리를 감당하고 있는 것 같아, 어느 날 폭풍 같은 미팅과 회의 사이에 잠시 눈을 감고 묵상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내 찾아온 고요 속에서 주님은 이 모든 일과 한국WEC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주인이십니다! 그분이 부족한 우리를 이 자리로 부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 주님은 우리가 주님 외에 다른 것으로 두려워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일을 잠시 맡은 대리인일 뿐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며, 대리인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충성’일 것입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부르심과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선교 역사 한가운데 동참하는 길이며, 쓰임 받는 길이라 믿기에 한 걸음씩 내딛는다’라는 생각을 하니, 우리가 부르심에 대한 순종 하나로 서 있다는 확신이 다시 생겼습니다. 이때 비로소 두려움과 떨림의 의미가 새롭게 정의되었습니다. 바로 ‘주님을 경외함’입니다. 이 정의만이 우리의 두려움과 떨림의 전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교’라는 삶의 여정은 늘 이 두려움과 떨림이 함께해 왔습니다. 우리의 계획과 통제가 적용되지 않는 땅으로 나가는 선교사들은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근심에 사로잡히기보다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걸어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만을 경외하는 자가 지닌 믿음이었고, 그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믿음의 계보를 이어 서있습니다. 익숙하고 안전하며 확실해 보이는 자리를 떠나, 오직 주님만 믿고 바라보며 걸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선교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자민족중심주의로 인한 전쟁과 혼돈, 무역 분쟁, 그리고 AI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삶의 형태가 빠르게 변하는,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큰 시대입니다. 이러한 세계정세의 급변은 선교 환경에도 어려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선교가 가능한 나라들은 점차 줄어들고 선교의 동력은 약해지며, 교회의 선교 관심도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전도종족 선교’, 즉 복음이 없는 곳으로 가겠다(롬15:20)는 바울의 결심을 따르는 선교를 마치 시대가 지난 유행처럼 여기는 시각이 늘어난 것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러 도전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 우리 WEC선교회의 방향이었습니다. 우리 WEC 선배 선교사들은 ‘믿음, 거룩, 희생, 교제’라는 네 기둥의 성경적 정신을 붙들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격변 속에서도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전도종족에게 전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세계의 미전도종족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며 예배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다시 견고히 하며 한국본부 공동체와 함께 이 길을 계속 걸어 나갈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다시 복음을 붙들도록 격려하고 동원하며 훈련하여 파송하고, 현장의 선교사들을 돌보며, 보내는 교회와 함께 건강한 선교를 세워가는 데 힘쓸 것입니다. 영적 도전은 앞으로도 우리를 떨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두려움과 떨림의 대상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십니다. 그분 앞에서 더욱 낮아지고, 섬기고, 순종하며 믿음으로 서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새해를 시작하며
글 마성민, 김선희 (한국 WEC 대표)
위 글은 RUN지 115호(2025년 겨울호) 프롤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