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선교 현장
이 시대의 풍조
작성자
WEC
작성일
2021-03-15 22:03
조회
1180
캄보디아는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앙코르와트로 인해 한국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비교적 안전한 나라이기에 단기선교 여행을 위해서도 자주 찾는 곳이다. 비자에 대한 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이웃나라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접근성이 좋은 곳이라서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사역을 하고 있다. 과거 크메르 루즈 집권 당시(1975년~1979년),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수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있었다. 적어도 한 가정에 몇 명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죽임을 당한 아픔은 이들의 삶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오랜 역사를 가진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불교를 신봉하는 국가이다. 이곳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영향으로 혼합된 힌두-불교적 세계관을 지니고 살아간다. 특히 미신이 만연하고 주술과 점술을 믿으며 두려움의 굴레에 갇혀 모든 일상에 두려움을 느끼며 산다. 그러나 이 땅의 긴 역사의 사연을 깊이 묻고 이 세대를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풍조는 바로 물질 만능주의이다.
이 땅의 이러한 영적 전쟁 가운데 놓여 있는 믿음의 두 친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들은 이 시대 프놈펜에 사는 그리스도인인 청년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A는 가족 중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의 삶을 인정해 주지 않는 가족과의 갈등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B는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 인해 2대째 신앙을 가지고 물질이 모든 것 위에 우선되는 이 땅에 만연한 가치관과 맞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내가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도착하여 머문 곳에서 A를 만났다. 그 후 우리는 10년 동안 친구로 지내고 있다. A는 캄보디아의 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에 가서 영어를 배우게 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교회를 다녔고, 오랜 시간이 지나 주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생활과 벌이가 우선순위이다. 그동안 많은 선교사들을 만나고 설교를 들었지만 그들의 실제 삶을 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를 딴 세상 사람인 양 여기고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 우리는 사역 중에 외국인 선교사와 현지인의 관계가 아닌 친구로 만났기에 때로는 나의 약한 부분까지도 보여주고, 내 생활의 어느 부분까지도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선교사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었기에 이렇게 삶을 나누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서 수많은 삶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의 세계관을 나눴다. 넘어지고 후회할 때도 많지만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영적인 힘에 대항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나누었다. A가 비록 약하고 여리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많은 영적인 세력에 대항하고, 물질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청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오직 우리 삶의 답(answer)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늘 기도한다.
또 다른 친구 B는 캄보디아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만나 5년 이상을 꾸준히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 군인이었던 B의 아버지는 극적인 회심을 했고, 그로 인해 B는 믿음을 물려받게 되었다. 선교사를 통해 영어를 배우고, 그 후 선교사들에게 캄보디아어를 가르쳤다. 캄보디아 목사님과 함께 전도사로서 교회를 함께 섬기다가 나중에는 교회를 개척하였다. 영어를 잘 하는 B는 많은 캄보디아 청년들처럼 급여가 좋은 비영리단체나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B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교회를 섬기는 것과 선교사들에게 캄보디아어를 잘 가르쳐 이 땅의 선교 사역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하지만 평탄치 않은 B의 삶을 지켜보면 가슴이 아프다.
번영 복음(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이 만연한 이 땅에서 외롭게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사단은 여러 방법으로 그 삶과 소명에 의심을 갖게 만든다. 때로는 개인의 잘못된 선택과 분별로 실족하는 결과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 B와 그의 가족이 사단의 공격이 있는 영적 전쟁 가운데 있음을 느낀다. 수많은 캄보디아의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고 목회자들조차 선한 사명으로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지만, 가난함 속에서 그 치열한 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을 본다. 우리 모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순간순간 ‘물질로 보상을 좀 해주셨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B가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방법으로 그를 높이실 것을 믿으며,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기를 기도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글 이향숙
위 글은 RUN지 95호(2021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 땅의 이러한 영적 전쟁 가운데 놓여 있는 믿음의 두 친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들은 이 시대 프놈펜에 사는 그리스도인인 청년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A는 가족 중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의 삶을 인정해 주지 않는 가족과의 갈등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B는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 인해 2대째 신앙을 가지고 물질이 모든 것 위에 우선되는 이 땅에 만연한 가치관과 맞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내가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도착하여 머문 곳에서 A를 만났다. 그 후 우리는 10년 동안 친구로 지내고 있다. A는 캄보디아의 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에 가서 영어를 배우게 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교회를 다녔고, 오랜 시간이 지나 주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생활과 벌이가 우선순위이다. 그동안 많은 선교사들을 만나고 설교를 들었지만 그들의 실제 삶을 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를 딴 세상 사람인 양 여기고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 우리는 사역 중에 외국인 선교사와 현지인의 관계가 아닌 친구로 만났기에 때로는 나의 약한 부분까지도 보여주고, 내 생활의 어느 부분까지도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선교사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었기에 이렇게 삶을 나누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서 수많은 삶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의 세계관을 나눴다. 넘어지고 후회할 때도 많지만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영적인 힘에 대항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나누었다. A가 비록 약하고 여리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많은 영적인 세력에 대항하고, 물질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청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오직 우리 삶의 답(answer)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늘 기도한다.
또 다른 친구 B는 캄보디아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만나 5년 이상을 꾸준히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 군인이었던 B의 아버지는 극적인 회심을 했고, 그로 인해 B는 믿음을 물려받게 되었다. 선교사를 통해 영어를 배우고, 그 후 선교사들에게 캄보디아어를 가르쳤다. 캄보디아 목사님과 함께 전도사로서 교회를 함께 섬기다가 나중에는 교회를 개척하였다. 영어를 잘 하는 B는 많은 캄보디아 청년들처럼 급여가 좋은 비영리단체나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B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교회를 섬기는 것과 선교사들에게 캄보디아어를 잘 가르쳐 이 땅의 선교 사역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하지만 평탄치 않은 B의 삶을 지켜보면 가슴이 아프다.
번영 복음(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이 만연한 이 땅에서 외롭게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사단은 여러 방법으로 그 삶과 소명에 의심을 갖게 만든다. 때로는 개인의 잘못된 선택과 분별로 실족하는 결과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 B와 그의 가족이 사단의 공격이 있는 영적 전쟁 가운데 있음을 느낀다. 수많은 캄보디아의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고 목회자들조차 선한 사명으로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지만, 가난함 속에서 그 치열한 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을 본다. 우리 모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순간순간 ‘물질로 보상을 좀 해주셨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B가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방법으로 그를 높이실 것을 믿으며,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기를 기도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글 이향숙
위 글은 RUN지 95호(2021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