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본부장 칼럼

Column of last directors

역대 본부장 칼럼

잊혀진 주제, 희생

작성자
WEC
작성일
2011-11-24 23:29
조회
4716
- 최철희 -


저는 요즘 교회에서, 혹은 인터넷으로, 혹은 TV를 통해 설교를 들을 때가 많은데, 그 수많은 설교 중에 우리 WEC의 4가지 기둥에 견주어서 듣게 될 때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믿음>에 관한 설교가 가장 많은 것 같고, 그 다음은 <교제>, <거룩>에 관한 설교이고, 아마도 가장 다루어지지 않는 주제는 <희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희생>이란 주제로 설교하는 것은 참 듣기 쉽지 않습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오늘 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이 희생이 아닌가, 가장 관심 밖의 주제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요즘 <회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시내에서 상영되고 있는데, 이미 보신 분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 중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동족 유대인들에게 어떤 핍박을 받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천이라고 하지 않고 <메시아닉 쥬>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의 적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바로 같은 동족인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당하셨던 핍박과 고난을 지금 그대로 당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당했던 박해를 그들의 사회 속에서 그대로 당하는 모습들을 그 다큐 영화를 통해 보게 됩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들이 듣는 설교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주제가 <희생> 혹은 <믿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땅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그들의 사회적 환경에 따라 요구되고, 적용되는 주제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물론 개인적으로는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비교적 안정되고 평화로운 가운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희생>이란 주제가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이고,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경쟁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교회 역시 점점 물량주의에 빠지고 세속화 되어가고, 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요한 계시록에서 말씀하신 <라오디게아 교회>를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나 세상적인 성공과 성취가 곧 은혜요 축복이라고 착각하면서, 오히려 영적으로는 가장 메마르고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도, 아니면 우리가 선교지에 나가서도 바로 이런 나약하고 왜곡된 신앙을 그들에게 접목시키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몇 년 전 아프칸 사건 이후 일부의 교회들은 위험하고 힘든 지역에는 선교사를 보내기를 꺼려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교회가 책임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 WEC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지금도 세계 선교의 분포를 보면 40%의 복음이 필요한 지역에 선교사들이 들어가 있는 것은 불과 8%에 국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선교 사역에 쓰는 재정 투입 역시 비복음화 지역을 위해서는 겨우 1.2%의 재정이 투입됩니다. 그 외에는 이미 복음화가 된 60% 지역 안에 선교사도, 재정도, 성경 번역과 보급도 다 투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40%의 비복음화 지역은 선교사들이 들어가기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지역입니다. 가장 <희생>이 요구되고 <믿음>이 필요한 지역입니다. 저는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해 봅니다. CT Studd가 지금 선교지로 간다면 단연 다시 이 비복음화 지역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가 외쳤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희생하자, 안일한 생활을 벗어나 주의 군사로 일어서라고 외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가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목에 핏발을 세우고 꾸짖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나머지 위험하고 어려운 비복음화 지역을 위해서 이제야 말로 우리가 <희생>이라는 주제를 우리의 삶과 사역 속에 실현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어떤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는 CT Studd의 고백이 결코 헛된 구호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