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본부장 칼럼

Column of last directors

역대 본부장 칼럼

뱀처럼 지혜로워라

작성자
WEC
작성일
2011-11-24 23:39
조회
6264
- 최철희 -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예수님께서는 동물의 비유를 들어 우리 자신의 모습과 우리가 만나야 할 대상들의 속성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에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인데, 저는 선교사들을 파송할 때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지금 우리 선교사들이 가는 곳은 마치 이리의 속성을 가진 지역들이며, 우리 선교사들은 순진무구한 양들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는 키르기즈스탄에 갔을 때 양을 잡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양처럼 순하고 멍청한 동물이 있는가 싶습니다. 양은 끌려가서 목에 칼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정말 찍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도수장으로 끌려가면서 잠잠한 양과 같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사53:6) 이 말씀은 물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긴 하지만, 복음을 거부하는 땅, 선교사들이 발붙이기 어려운 땅에 가서 여러 가지 횡포를 당해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선교사들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양의 또 한 가지 특성은 자기 집을 못 찾아 간다는 겁니다. 다른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둥지를 찾아 들어갈 줄 아는데, 유독 양은 자기 집을 못 찾아 갈 정도로 둔한 동물입니다. 주인이 없으면 혼자 살아내지 못하는 동물이며, 보호 무기 하나 없는 그야말로 무방비, 무능력한 동물입니다.

 

이런 모습의 종들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려니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런 모습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 어리석고 약하고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을 아십니다. 이런 어리석고 무능한 우리에게 주님은 “제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어리석고 무능한 양 같은 우리에게 뱀처럼 지혜로워라 하는 말씀은 얼핏 보면 모순인 것 같고, 불가능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문다(고후 12:9), 그래서 오히려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하다(고후12:10)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고(요15: 5) 너희가 성령을 받은 후에야 나의 증인이 될 수 있다(행1:8).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우리는 지혜로워질 수 있고, 순결해질 수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뱀처럼 지혜롭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저는 이것 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뱀이라면 사단의 상징인데, 왜 하필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하셨을까? 그것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뱀이라는 짐승의 속성이 무언지 생각해보았는데, 그 말씀이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겁니다. 뱀은 다른 동물에 비해 신체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갖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요. 걸어 다닐 수 있는 다리도 없고, 잡을 수 있는 손도 없고,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도 없습니다. 쓸 데 없이 긴 몸뚱이에 눈과 입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뱀은 돌아다니지 못하는 데가 없습니다. 땅 속도, 물 속에도, 나무 위에도, 숲 속에도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무도 볼 수 없도록 소리도 없이 아주 몰래 잘 다닙니다. 숨는 데 귀재입니다. 선교사들의 모습과 좀 닮은 데가 있지 않습니까?

 

‘지혜롭다’는 말을 찾아보니까 영어로는 wise가 아니고, shrewd라는 말을 썼습니다. 좀 나쁜 의미로는 ‘아주 약싹 빠른’이라고 해석하고, 좋은 의미로는 ‘통찰력 있는’ ‘예민한, 기민한’ 이런 뜻으로 사용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왜 wise란 의미를 사용하기지 않고, shrewd란 의미를 사용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가야 할, 우리가 부딪쳐야 할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예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세상을 능히 이기려면 그 세상의 지혜를 능가하는 지혜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능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뱀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것 같으나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소리 없이,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고, 통찰력 있고, 예민한 판단력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지혜 없이 나아가는 것은 마치 어리석은 양이 이리 속으로 걸어가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또 한 가지는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정말 순결한 동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 순결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얼핏 생각하면 뱀과 비둘기는 매우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순결이 결여된 지혜라면 그것은 악을 도모하는 사탄적 지혜이며 창세기에 나오는 뱀처럼 교활한 지혜, 악한 지혜일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pure)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3: 13)

 

위로부터 난 지혜, 성령의 지혜는 순결, 성결을 동반하는 지혜입니다. 그것은 화평, 관용, 양순, 긍휼 그러한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지혜를 상실한 순결은 어리석음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지혜로움이 순결을 상실하면 교활함이 되고, 순결함이 지혜를 상실하면 어리석고 미련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다 필요하고, 또한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속성이며 성령의 속성이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 안에 우리에게는 다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순결함을 가지지 않고 세상에 나간다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지혜나 힘으로 이기려 해서도 안 되며, 세상의 지혜에 밀려서도 안 됩니다.

 

오늘날처럼 약고 똑똑한 세상, 오늘날처럼 악하고 부패한 세상에서 잃어버린 또 하나의 양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순결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선교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날마다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지혜로 가득 차야 할 것이고, 우리의 가슴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순결로 가득 차야 할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