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성공을 꿈꾸며 “
사 람들은 누구나 성공하는 인생을 만들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꿈꾸며 살아간다. 흔히, 여러 가지를 성취하며 바쁘게 다니고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며 박수를 치며 성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선교에 있어서도 성공의 잣대로 개척된 교회의 수와 회심자의 숫자를 따지거나 얼마나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를 통해 성공을 계측하려는 풍토도 존재하는 것 같다.
얼마 전 WEC 100주년 행사를 진행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온전히 서라’ 는 음성을 주셨고, 소박하게 가족적으로 행사를 치르면서 다시 한 번 성공적인 선교는 무엇일까 고민하며 헌신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가지 말로 성공적인 선교를 정의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성공적인 선교의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나 목표를 이루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타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나누고 하나님 한 분만 영광을 받으시는 것, 다시 말해 ‘십자가의 길이 우리들의 삶에 녹아 들어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다.
WEC 안에서 오래 동안 사역한 선배 선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것은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다. 지난 5월 국제조정위원회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이다. 일본에서 35년을 사역한 ‘패트릭’이라는 은퇴하신 선교사님은 말씀을 전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이런 말씀을 했다.
“WEC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예수께 더 가까이 이끌기 위해 선택된 도구입니다.”
이 말을 풀어보면 우리를 제자로서 선교적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우리들이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데 있고, WEC은 그런 제자들로 구성된 공동체로서 또 다른 이들을 주님께 더 가까이 이끌게 된다는 통찰력 있는 말씀이었다.
그렇다. 선교는 우리들이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예수님을 살아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제자도를 실천하는 장이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의 열매는 포도로 알 수 있는 것처럼 ‘ 진정한 성공’의 잣대는 우리 개인과 공동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삶을 통해 미전도 종족들이 주께 돌아오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난 100년간 지속되어 온 주님의 부르심이며 꿈꾸어야 할 성공이리라.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런 진정한 성공적인 선교적 삶을 살아가갈 수 있을까?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이 세대의 가치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롬12:2)’ 그 위에 믿음으로 서는 일이다. 비록 이 세대의 잣대로 미련해 보이고 많은 것을 희생하는 것 같을 지 모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이 명확해지면 손해를 감수하고 다시 하나님께 믿음을 두는 것이다.
최근 6월 말까지 현 위치의 건물 인수를 통해 본부 건물을 마련하려고 했던 계획에 대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어 일단 우리의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향을 다시 간구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고, 지금까지 동참한 이들이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시작하셨으니 최상의 것으로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믿음에 굳게 서서 기도하며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 라고 말씀하셨다. 더 나아가 이 결정은 우리가 무리해서 목표한 대로 결과를 내고 성취하는 기쁨을 갖는 것 보다 주님의 시간에 인도하신 곳까지 순종하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영광 받으신다는 것을 공동체가 함께 깨닫고 결정한 결과였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것만 행한다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 한 가지만 구하고 실천하는 WEC 공동체의 모든 형제, 자매들이 되길기도 드린다. 하나님의 경이로운 예비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주님의 진정한 성공에 동참하는 가족 모두가 되길 바라며……
글 박경남, 조경아 WEC 한국본부장
* 이 글은 RUN지 65호에 권두언으로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