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끄적끄적 했는고?
1. 영원한 갈증을 느끼다 /
2. 십자가 복음에 못 박히다 /
3.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
4. 복음 배달부 /
5. 작지만 위대한 시도들 /
6. 1대100 /
7. 날마다 확인사살! /
8. 예고 없이 찾아온 위기/
9. ‘선교사 불합격’, 다시 십자가로 /
10. 재직증명서에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선교동원가 /
11. 나를 위한 선교 멘토가 있다면! /
12. Contents of [WEC n TALK] /
13. 젊은이 선교동원의 돌파구, 그 가능성 /
14. 열방의 소망, 예수! 복음! 그리고 선교!
- 영원한 갈증을 느끼다
하나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십자가의 놀라운 구원을 통해 우리를 창조의 원형으로 회복하셨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일들 때문에 우리는 영원토록 황홀한 기쁨에 도취되어 즐거워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창조 목적을 이루신다. 나는 이 복음의 감격을 경험하고서 자연스럽게 선교에 헌신했다.
선교에 헌신하기 이전의 나는 자기 의가 참 충만했던 사람이었다. 주일학교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열심히 전도했다. 20대 중반에는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며 나름대로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품었다. 한창 성경을 읽던 때, 그러니까 아침부터 잠자는 시간까지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성경을 읽던 때가 있었는데, 도서관에 앉아서 성경을 읽을 그때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이 나를 압도했다.
그런데 이 기쁨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안에 또 다른 한 반응이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말씀의 빛이 내 안에 조명되어 나의 죄 된 실체가 환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나의 신앙 양심을 괴롭혔다. 나중에는 성경 한 장을 넘기는 것도 두려울 만큼 하나님의 임재 앞에 바들바들 떨었다. 살려달라는 기도 대신에 ‘거룩하신 하나님, 이 죄인을 죽여 주십시오. 그냥 손가락으로 쿡 찍어 죽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만 나올 뿐이었다. 너무나도 두려웠고 살 소망도, 용기도 없었다. ‘아, 나는 영원한 죄인이구나. 이 사망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존재자체가 죄악이로구나’ 처절한 절망 속에서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두렵도록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대 앞에 서 있었다.
- 십자가 복음에 못 박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주셨다. 2000년전 갈보리 언덕 위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 옛 사람은 죽었고, 예수 부활 하실 때 나도 함께 부활한, 이 놀라운 복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내가 여전히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이 실제로 믿어지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예수그리스도가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셨다.
그 날부터 내 삶은 급격히 변했다. 모든 삶의 문제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기 시작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결혼, 진로, 미래 등 삶의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치열하게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믿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마땅히 온 우주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열방의 모든 영혼들이 주님을 영화롭게 해야만 한다!’ 이런 삶의 목적이 분명해 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나는 선교의 부르심에 응답 할 수 있었고, 동시에 자연스런 생명의 반응으로 이 복음의 영광을 함께 나눌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나는 선교의 여러 영역 중에서도 처음부터 선교 동원에 마음을 빼앗겼다. 뭔가 좋은 것이 있으면 어서 빨리 남들에게 알려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성향도 한몫 했을 것이다. 복음과 선교라는 너무나 커다란 선물을 받은 나는 그것을 얼른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내가 처음부터 선교 동원에 마음이 끌린 이유도 선교 동원이라는 것이 단지 ‘사람들을 선교 현장으로 배치하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선교 동원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스러운 분이신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하나님의 이름이 모든 열방에서 영화롭게 되기까지 어떠한 열심으로 일하시는지를 사람들에게 나누고,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게 하는 것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내가 선교 동원의 비전을 품게 된 데는 세가지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복음을 통해 자연스러운 생명의 반응으로 열방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을 모든 열방으로 전파하기 위하여, 주위에서 함께 이 마음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다. 두 번째로 이유는 선교현장을 둘러보며 그 곳 에 선교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로 내가 선교 동원가가 된 이유를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나는 ‘동원가’로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 복음 배달부
내게 세상의 가장 큰 즐거움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나 사람들을 만나서 각자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복음과 선교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 가곤 한다. 가끔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남녀가 내 앞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듣게 된 대화 내용은 새벽에 티브이에서 본 만화얘기였다. 어떤 왕에 대한 얘기였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아주 흥미진진하게 그 만화 내용을 이야기 해 주었고, 재미있으니 새벽에 방영 하긴 하지만 꼭 한번 보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내가 아는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래서 슬며시 나도 대화에 끼었다.
“흠, 저기…… 본의 아니게 얘기 듣게 되었는데요, 그 만화 정말 재미있겠네요. 근데 저도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왕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들려드릴까요?”
그리고는 내가 아는 이야기 중에 가장 감동적인 왕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렇다. 당신이 예상한 바로 그 이야기이다. 백성들을 사랑하다가 사랑하다가 자기 아들의 목숨을 내어 주면서까지도 자기백성을 사랑한 왕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끼어들기’에도 불구하고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었다.
- 작지만 위대한 시도들
청년 시절, 내가 속해 있는 교회 청년 공동체에서 청년들에게 성경통독을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성경을 통해 복음을 들었고, 성경을 통해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으니 성경통독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통독 모임 시간 동안 간단한 묵상의 나눔이 있긴 했지만, 정말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성경만 읽었다.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심령을 찔러 쪼갰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심령에 부어졌다.
성경을 읽고 나서는 정말 다양한 방법들을 가지고 성경 전체에 흘러가는 하나님의 마음을 청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성경 스토리텔링, 성경 퀴즈 대회, 세계선교를 위한 인터넷 라디오방송 등등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든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다. 재미있었던 건 주일예배를 다 마치고 보통 저녁에 청년들끼리 모여서 교제하곤 했는데, 잘 놀고 있는 청년들에게 슬쩍 성경 퀴즈를 한 번 해보자고 제안하자 처음에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던 친구들이 나중에는 성경을 막 뒤져 가면서 성경 퀴즈 푸는 것에 열의를 보였던 것이 생각난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도 고정 청취자들이 생기고, 그분들이 사연도 보내고 그랬다. 그 때는 이런 것들이 선교 동원의 한 부분인줄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저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 1대100
두 번째로 내가 선교 동원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선교현장을 둘러보며 그 곳 에 선교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비전 트립으로 다녀온 경험이 있다. 선교 현장을 둘러 보며 언제나 드는 생각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에 비해 사역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선교동원가는 누구인가? > 라는 글에 소개된 정민영선교사의 글에 이런 표현이 있다.
‘산불이 났다. (중략)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현장에 나 외에 아무도 없다. (중략) 이 상황에서 내가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중략)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은 자명하다. 속히 사람들에게 알려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다. 선교동원가는 바로 그러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현장에 나가는 사역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역은 선교사를 배출 할 수 있는 나라들에서 잘 훈련된 사역자들을 더 많이 배출하는 일이다.
10여 년 전, 교회 청년들과 함께 동남아시아로 비전트립을 갔었다. 그 곳에서 사역하는 두 명의 선교사와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정글에서 여러 문화 충격을 겪으며 선교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생겼다. 짧은 기간만 있다 돌아가기에는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았다. 선교사님이 우리 팀에 찬양인도를 맡았던 청년에게 그 곳에서 단기 선교사로 함께 사역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들었다.
그 때는 그것이 참 특별하고 아름다운 부르심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선교지에서 함께 일할 한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고민으로 들린다. 이제 막 처음으로 비전트립을 경험한 어린 청년을 동원해야 할 만큼선교지에는 일꾼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은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하신 주님의 탄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것은 비단 한 선교지의 이야기 만은 아니다. 안식년에 본국으로 오는 여러 선교사들이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 선교현장을 소개하며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도 단기 팀들이 올 때,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사역 현장들을 소개하므로 장단기로 도울 협력자들을 얻는 것이다. 내가 WEC에서 선교 훈련을 받는 동안 우리 가정을 본인들의 선교지로 오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한 선교사들만 해도 십 여명에 달한다. 본국에서 동원 사역을 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여러 차례 권유를 받고 있다. 우리가 뛰어난 자원이라서가 아니다. 그 만큼 선교현장에서 함께 일할 선교사들이, 해야 할 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 날마다 확인사살!
그렇다면 무조건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는 것이 선교동원가들이 해야 할 일인가? 단순히 많은 수의 사람들을 보내는 것 보다는, 잘 훈련된 좋은 사역자들을 보내야 한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현장에서 보고 들은 몇몇 선교사들의 고충 중 하나는 함께 일하는 사역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긴장’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타 단체의 사역자들과 뿐 아니라 한 팀으로 일하는 사역자들과도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들로 인해, 종종 연합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어렵다고 선교사들스스로 고백했다. 이 선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자들이며,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산을 옮길 믿음과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연합은 오직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선교사들에게서는 사랑을 찾아 볼 수 없었나? 그래서 연합을 가로 막았던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교사들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깨뜨려 열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한 ‘날마다’ 죽어야 한다. 매일의 이 지루한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승리 뒤에 감추어진 영광을 보기 위하여!)
그러므로 선교동원가는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만 사시는 복음에 날마다 반응 하는 좋은 선교 자원들을 발굴해야 한다. 또한 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선교에 도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 역시 선교 훈련 기간 동안, ‘나 스스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더욱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게 되었다.
- 예고 없이 찾아온 위기
선교 헌신 이후, 나는 2년간 국내의 한 선교 단체에서 선교훈련을 받고, 그 후 WEC의 선교 후보생으로 호주에서 4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마지막 WEC 후보자 오리엔테이션만 받으면 길고 긴 선교 훈련도 끝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받게 된 후보자 오리엔테이션은 호주에서의 선교훈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호주에서는 두 번이나 선교훈련을 중도에 포기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뉴질랜드에서의 3개월은 선교 훈련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휴가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또 뉴질랜드에서 만난 Kiwi(뉴질랜드 사람들을 부르는 별칭)들은 정말로 편안했다. Kiwi들의 정서는 마치 동양인에 더 가까운 듯 느껴졌는데, 일반적으로 서양인들에게서는 찾기 힘들었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아무런 어려움도 끼어들 틈이 없이 평안하던 바로 그 때, 나는 오히려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3개월의 오리엔테이션 과정 중 두 달째 되던 어느 날,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축복이었다! 임신테스트로 확인을 한 후 오리엔테이션 담당자 부부와 뉴질랜드 WEC의 모든 스텝들은 우리 부부를 축하해 주었고, 최대한 무리 없이 오리엔테이션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기쁨의 시간도 잠시, 몇 주 뒤 우리는 유산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의료 보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초음파 검사 한 번, 피 검사 한 번 받는 것도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기에 쉽사리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아기를 잃은 슬픔을 채 느낄 겨를도 없이 아내의 병원 진료에 대한 수속, 오리엔테이션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차선책 강구, 병원비로 인한 재정의 압박, 여전히 챙겨야 할 세 명의 어린 자녀들이 있었다. 그 중 무엇보다 걱정이 되었던 것은 아내의 건강이었는데, 아내는 정확히 일년 전 호주에서도 유산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진료를 제대로 받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늦게라도 여행자 보험을 들어볼까 했지만 산부인과 진료에 혜택을 주는 여행자 보험 상품은 없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오고도 싶었으나 그 것도 어려웠다.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다시 일본을 거쳐, 일본에서 열흘을 머물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모든 비행 스케줄을 짜놓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변경하면 모든 일정이 다 틀어지게 된다. 새로 비행기 티켓을 살 재정도 없거니와, 만약 있다 해도 500만원 가량 손해 보아야 하니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일본을 선교지로 염두 해 두고 있었으므로, 정탐 여행 차 일본을 들렀다 귀국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 ‘선교사 불합격’, 다시 십자가로
주위 분들의 극진한 배려와 섬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예민해진 마음은 꾹 참아왔던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었고, 아이들에게도, 아내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상처를 남겼다. 그러다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말로 아내와 나는 불같이 충돌했다. 견딜 수 없는 분을 품고 집 밖으로 나왔다. 비 내리는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나도 할 만큼 했는데 날 더러 더 어쩌란 말이냐며, 하늘을 향해 원망하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하고, 가슴 속에 응어리 진 것을 다 쏟아내려던 참이었다.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지난 7년 동안 선교 훈련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동안 하나님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지. 많은 위기도 있었지만 참 잘 이겨왔는데, 결국 선교 훈련의 마침표를 찍는 자리에서 가장 밑바닥을 치는구나!’ 내 가슴에는 ‘선교 불합격자’ 라는 표와 함께, ‘사랑 없는 자’라는 불 도장이 찍히는 듯했다. 내가 힘들면 내가 낳은 자녀들이라도 용납하지 못하는 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의 아픔을 끝까지 보듬어 주지 못하는 이기적인 자. 십자가에서 죽었다던 옛 자아의 허상이 버젓이 살아 있는 듯 했다. 비참했다.
주님께서는 나의 비참함에 비참함을 더 하시려는 듯, WEC 뉴질랜드 스텝들이 회의를 통해 우리 다섯 식구가 최대한 빨리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 갈 수 있도록 뉴질랜드-인천 직항 비행기 티켓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오리엔테이션을 끝까지 다 마치고 예정된 대로 일본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한 가족으로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내 안에 사랑 없음이 그들의 넘치는 사랑과 극명하게 대비가 되며, 나의 믿음은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다음 날이 주일이었는데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 하셨다.
‘나는 너의 그 깨어진 심령을 통해 일 할 것이다. 너의 모든 것은 다 내 것이다.’
열방을 사랑한다던 그 마음마저도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열방은 커녕 한 사람도 사랑 할 능력이 없는 ‘사랑 없는 자’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셔서 사랑이 되셨다. 오직 십자가의 예수께서만이 사랑으로 연합을 가능하게 하신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계속해서 이 것을 우리 삶 속에서 실험해 보고 있다. 그렇다. 예수 붙잡으면 살고, 예수 놓치면 죽는다.
이렇듯, 그 동안 여러 선교 현장을 돌아보며, 현장으로 나가야 할 선교사들이 현재 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선교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사는, 잘 훈련된 자들이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 사람들을 발굴하여 선교 현장으로 보내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10. 재직증명서에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선교동원가
세 번째로 내가 선교 동원가가 된 이유를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나는 ‘동원가’로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WEC이 지향하는 세가지 사역; Reaching unreached (미전도 전방 개척), Planting churches (교회 개척) 그리고 Mobilization (선교동원). R.P.M, 이 세 영역들 중에 내 가슴을 가장 뛰게 하는 것은 바로 ‘동원’이다. 물론 리서치와 정탐을 통해 전방을 개척하는 일도, 현지 토착 교회를 세우고 제자를 양육하는 일도 경험해 보고 싶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을 해보고픈 동기는 그 경험들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선교로 동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20대에 선교에 헌신하면서부터 동원가가 되는 것을 꿈꿔 왔다.
30대인 내가 2, 30대 선교 관심자들을 동원하는 데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교 헌신자들이 겪고 있는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대한 고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거나 현재진행형인 것들이 있다. 불과 7년 전에 WEC에 선교후보자로 영입되었고, WEC의 선교 훈련을 모두 마치고 최종 영입 된지는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아직 선교사 재직증명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햇병아리 선교사이다. 선교사 후보생 시절이 엊그제였으니 이 생생한 기억들을 가지고, 선교에 첫 발을 내딛고자 하는 청년들의 떨림과 고민이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있다.
WEC 선교회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WEC 한국본부로 전화를 걸었던 그 설레고 어색하던 날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누군가 선교에 관심이 있어서 선교단체에 전화를 준다면 선교단체에서는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인데, 그 때 나에겐 문의 전화 한 번 하는 것도 정말 큰 담력이 필요했다. 또 교회에 믿음 선교에 대해 나누었을 때 예상치 못했던 부정적인 반응들, 너무나 극단적인 사람처럼 바라보던 시선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고민했었다. 대체 이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 건지, 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주님을 위해서 생명까지 드릴 수 있다는 거창한 고백이 무색하리 만치, 도대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내 삶을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었다. 특히 선교한국 대회를 참가하고 나서는 이 고민이 더 커졌는데, 왜냐하면 세계 선교를 위해 선교 단체의 종류와 해야 할 사역들은 너무나 많았지만, 그에 비해 나는 그 일들을 하기에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해 보였기 때문이다. 집에 가지고 온 선교단체 안내서들을 방바닥에 쭉 펼쳐놓고 한참을 들여다 보며 꼼꼼히 읽어 보았다. 살펴보면 볼수록 선교지에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선교단체를 고르고 들어가는 것만 해도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대학 중퇴에, 특별한 기술이나 변변한 자격증도 하나 없고, 영어나 타문화 경험도 보잘것없고, 그렇다고 뼈를 묻어야겠다는 선교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외에 준비된 것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세계 선교를 위해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사람들이 나를 좀 도와줬으면…… 선교한국 이 후, 그런 간절한 바램을 갖고 있을 때 국내의 한 선교단체를 통해 15주 과정의 선교학교를 수료하며, 거기에서 만난 선교 헌신자들과 함께 교제했던 것이 조금씩 선교사로 준비되어가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11. 나를 위한 선교 멘토가 있다면!
첫발을 떼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믿음의 길을 가는 것처럼, 선교로 발을 내딛는 것도 그렇다. 앞서가신 우리 주님과 그 길을 따르는 무리들을 보며 우리도 그 발자국을 따라 간다. 그렇기에 선교동원 사역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선교 소그룹 멘토링’ 사역이다. 누군가 먼저 이 길을 걸었던 사람이 좋은 멘토로 선교 관심자들을 돕는다면, 그들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선교와 선교 훈련을 준비할 수 있다.
WEC에서는 “WEC n TALK(웩앤톡)”이라는 선교 소그룹 멘토링 사역을 통해 선교 관심자들을 가까이에서 돕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4-5명의 선교관심자와 WEC선교사가 함께 만나 서로가 고민하고 있는 바에 대해 나누며, 선교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자리이다. 선교의 현장과 동향들을 탐구하며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모임이다. 무엇보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젊은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큰 격려와 도전이 된다. 관심있는 분들은 언제라도 열려있는 이 모임에 참여하기 바란다.
12. Contents of [WEC n TALK]
WEC n TALK은 선교사가 되기까지 선교헌신자가 준비해야 할 많은 주제들을 다루어 가며, 이것들을 함께 준비해 나가는 모임이다. WEC n TALK의 전신인 ‘예비선교사클럽’이 2013년 12월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많은 예비선교샤원들이 거쳐 갔다. 각자의 선교의 길을 찾아가는데 시기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 모임에 참여한 분들 중에서 WEC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사역을 하고 있거나, 혹은 훈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WEC과 다양한 방법으로 통해 동역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꼭 어느 선교단체와 함께 하지는 않지만 보내는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더욱 분명히 해가는 사람들도 있다. 선교에 대한 도전을 이미 받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길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는 선교 헌신자들이있다면, 나는 이런 선교 소그룹 멘토링이 그런 분들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꼭 그룹이 아니어도 좋다. 한 두명만 모여있어도 선교 멘토가 필요하다면 찾아가서 도울 수 있다.
“WEC의 문을 두드리라!
당신의 선교열정 ‘톡’하고 터지리라! 웩 앤 톡!”
[문의]
Email: mobi@weckr.org 또는
kakao talk ID: wectothefuture
13. 젊은이 선교동원의 돌파구, 그 가능성
젊은 동원가는 젊은이 선교동원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선교 동원의 여러 가지 도전 중 하나는 선교지에 처음으로 나가는 선교사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높아지는 연령대를 낮추기 위해 선교계에선는 여러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2, 30대들을 선교 동원 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중에 그들과 좀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젊은 선교동원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선교 동원가들은 선교지를 경험하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동원 사역을 하기 때문에 보통 4, 50대 이상이다. 선교지에서의 풍부한 경험들과 노하우들을 통한 동원 사역은 효과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 감각의 청년 동원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젊은 선교관심자들과의 ‘공감’이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중요한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서로 뭔가 통(通)하는, 소위 코드가 잘 맞는, 잘 훈련된 젊은 동원가들과 함께 젊은 선교의 자원들의 가슴에 열방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사실 선교 현장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 선교동원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만약 후에 선교동원 사역을 위해서 단기로 선교지를 경험한다면 선교 현장의 사역들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항상 돌아갈 길을 염두하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선교지를 경험하지는 않은 것, 그러니까 오히려 어느 한 선교지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지의 다양한 측면을 객관적으로 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선교사님들로부터 수집한 객관적인 현장 자료들을 토대로 선교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혹은 현장 선교사와 선교 관심자들을 연결 시켜서 구체적인 정보들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게 지금의 내 역할이다. (이를 위해 구상하고 있는 몇 가지 가슴뛰는 프로젝트들이 있다! 궁금한가?)
14. 열방의 소망, 예수! 복음! 그리고 선교!
선교동원을 하며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이 정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그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철저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난 비참한 나를,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생명 값을 치르시고 살리셨다. 나를 살리셨다! 이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 사신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품을 수 있는 열방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품어지기 시작한다. 내일에 대한 염려와 고민들을 뒤로 한 채, 영원을 향한 믿음의 발걸음들을 옮긴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을 가치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재능을 드릴 수도 있다. 물질과 가능성과 시간을 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젊음의 때에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바로 우리의 ‘젊음’, 그 자체를 드리는 것이다! 단 하나 뿐인 생명과 쏜 살과 같이 지나가는 젊음을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 완성을 위해 드릴 수 만 있다면, 내게 있어서 이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떠한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C. T. Studd (WEC창립자)
글쓴이: 전주홍/ WEC 한국본부 동원팀장
전주홍 선교사는 20대에 선교사로 헌신했다. 아내 최주연 선교사와 함께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에서 7년간 선교훈련을 받았다. 선교 훈련 기간 동안 호주 City Mission과 함께 마약, 알코올 중독자 갱생 사역에 참여 했으며, 지역교회들과 함께 노숙자 돌봄 사역을 했다. 또한 호주 현지 교회를 찬양인도로 섬겼다. 현재는 WEC 한국본부에서 선교동원가와 ‘WEC n TALK’의 선교 멘토로 사역하고 있으며, 서울 서광교회(담임목사 조석연)에서 청년부 담당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다. 엘림, 누림, 드림, 아림, 네 자녀의 아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