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정신(Nomadic Spirit)”

 

교지에서 사역할 때 유목민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당나귀에 살림살이와 천막을 싣고 다음 목초지를 찾아 가족 모두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 단출한 살림살이를 가지고 단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문명의 혜택은 별로 누리지 못하겠지만 해맑게 웃으며 걷는 아이들, 열심히 양과 염소를 살피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도시 문명의 삶에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이런 모습은 무척 낯선 것이기도 했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삶도 비슷했다. 주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제자들이 이 말씀을 얼마나 이해했었을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의 좌, 우편에 자기 아들들을 앉게 해 달라는 요청을 보면 예수를 따르는 삶을 그리 깊이 있게 이해하지는 못했지 싶다. 어쨌든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바로 유목민과 같은 불안정한 삶, 단순한 삶으로 초대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은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확연히 거스른다. 삶의 근거를 확보하고 조금이라도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물질, 직장, 가정, 환경을 조성해 가려는 성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이후 발생한 불안정성을 극복해 보려는 인간의 자구노력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가 누리게 된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삶은 어느덧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예수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실제로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 세대의 가르침은 넘기 힘든 장벽인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장벽을 넘지 않고는 예수를 온전히 따르기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집이 최근에 이사를 했다. 요즈음 벌어지는 전세 난 때문에 조금 작은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삿짐을 싸기 전에 집을 정리하는데 어느덧 많은 것이 집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욱이 몇 가지를 버려야만 이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막상 버리려고 하니 삶이 조금은 불편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것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이는 것을 보며 ‘어느 새 더 편리한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할 때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쫓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이 세대의 도전을 뛰어 넘어 주를 계속 따라갈 수 없음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된다. 선교사가 된다고 자동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단순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의, 식, 주의 단순함은 비교적 쉬운 것이리라. 아이들 교육, 부모님 봉양, 의료 혜택, 은퇴 준비 등 다양한 것들이 유목민 정신으로 사는 삶에 도전해 온다.

 

예수님께서도 많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절대적인 안전지대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오셔서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사시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게다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 그런데 주님은 천국 복음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기꺼이 유목민으로 사셨고, 제자들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계속 되풀이해서 말씀하셨다.

 

선교는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사는 삶의 연속이다. 자발적으로 삶을 단순하게 만들기로 매일 결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한 삶이 우리의 부르심이기에 우리 시대 타인의 삶과 달라도 기꺼이 우선 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수님과 연합하여 진정한 승리로 나아가는 삶의 비밀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 바로 주님께서 따르라고 하신 유목민 정신이다.

 

글 박경남, 조경아 (WEC 한국본부 대표)

* 위 글은 RUN지 72호(2015년 봄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