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다. 모처럼 겪는 한국의 여름은 비오는 인도네시아 공항에 내렸을 때 만큼이나 숨이 막히게 후텁지근했다. 아직 차를 구하지 못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지하철을 타면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기에 잠시나마 살 것 같았다.
그 날도 천안에서 서울로 전철을 타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는 길이었다. 평택 쯤 갔을때 파키스탄 젊은이들 몇명이 내 옆에 앉았다. 10여 년 전 개그였나? 개그콘서트의 블랑카가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하던 유행어가 생각나서 파키스탄 젊은 이들에게 한국에서 일하기 힘들지 않냐, 사장님이 잘해주냐고 자연스레 물어보며 금새 친구가 되었다. 한 친구는 영어를 곧잘 했고 다른 한 친구는 뭐라고 한참 이야기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둘 다 무슬림이었기에 한국에 사는 무슬림들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중앙 아시아와 중동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 한참 양고기 얘기도 하고 내 기억 속의 따뜻했던 아랍문화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향수를 달래 주었다.
그런데 잘 나가다가 갑자기 가족이야기가 나오며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두 친구 중에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녀석이 맞은 편에 앉아있는 나의 아내를 보며 내게 이상한 농담을 던졌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 여성비하적인 농담 같았고, 이걸 그냥 농담으로 받아치기에는 기분이 나빠서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 가족을 해코지하려 했던 것은 물론 아니였지만,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대화는 어설프게 중단이 되었고, 나중에 그들에게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전철에서 내렸다.
나는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것이 도리어 우리 가족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어려웠던 것이다. 외국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쉬웠으나 친구가 되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에 그들 문화 안에서 이런 일을 겪었더라면, 아마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했을텐데, ‘내 문화’ 안에서 용납하기 어려웠던것은 여전히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숙제를 남겼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