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으로

마 전 어느 교회의 선교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은 선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답하는가에 따라서 선교에 참여하는 모습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기에 선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답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전도하고 제자를 삼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 두 가지 것은 선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의 원동력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 바로 겉으로 드러나는 사역의 밑바탕에 있는 동기가 ‘선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정한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교가 내가 조금이라도 남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행하는 활동이거나, 예수님의 명령에 대한 의무감으로 하거나, 선교에 참여함으로 예수님을 더 잘 따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참여하고 있다면, 아직도 선교의 진정한 동기를 깨닫지 못 했을 수 있다. 심지어 영혼의 추수가 주는 만족감이 선교의 동기라면 여전히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선교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초기 교회의 역사 가운데는 목숨을 걸고 예수를 따르고 전했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채찍에 맞고 고통을 당했고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쫓겨나 카타콤처럼 어두운 곳에서 소외되어 살면서도 증인이 되고자 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내가 추구했던 삶이나 죽음보다도 귀중한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보화가 담긴 밭을 샀던 사람처럼 삶의 궁극적 이유인 예수님을 그들은 만났기 때문이다.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만으로 충분함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때때로 서로에게 질문해 본다.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가? 예수님만으로 충분한가?’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 가족들과 주변의 필요를 공급할 수 없다고 느껴지고 내가 점차 연약해지고 있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아직도 예수님만으로 만족한가? 아니면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또 다른 어떤 것을 찾고 있는가?’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만으로 만족한 삶이 주는 진정한 기쁨을 매일 맛보는 삶이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은 진정으로 예수님만으로 충분한 삶의 비밀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랬기에 그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사람들의 오해를 받고 거절을 당해도 지치지 않고 새롭게하시는 주님 안에서 땅끝으로 갈 수 있었다.

선교는 활동을 통해 내 자아를 실현하고 만족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으로 충분하기에 자신을 부정하고 예수님으로 나를 채워 하나님의 빛을 흘려보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사건이 너무 놀랍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드려서 그분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떠한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WEC의 설립자 C. T. 스터드의 고백은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의 고백이었던 것 같다. 선교의 전략이나 사역을 논하기 전에 질문해 보자. ‘나는 예수님만으로 충분한가?’

글 박경남, 조경아 (WEC 한국본부 대표)

* 위 글은 RUN지 77호(2016년 여름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