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역사를 보면 그 때 당시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여겨질 것들을 포기하고, 열대 우림에서 젊은 나이에 죽어간 이들이나, 질병과 자녀 교육의 문제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다. 상당히 많은 이들은 ‘왜 그렇게 무모한 삶을 살았는가?’ ‘너무 인생을낭비한 것 아닌가?’ ‘그렇게 하는 것만이 제대로 믿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이들은 그런 사람들은 우리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역사에 기록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들과 다르니 그저 평범하면서도 행복하게 살겠다고 하기도 한다. 격조 있는 삶을 영위하면서 적절한 신앙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물론, 일리가 있는 의견이고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선교 역사에 나오는 이들의 삶을 적어도 ‘무모하거나 낭비하는 삶’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결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동시에 부활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어서 최고의 인생을 살았다고 우리들에게 증언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젊은 의사 부부가 우리 선교회에 후보자로 영입되었다. 어린 자녀들도 있고 사랑으로 섬겨야 할 부모님도 계셨다. 그런데, 두 사람은 최선의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끝에 타인을 위해 나의 삶을 나누는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주님께 나아왔다. 모교에서의 교수직을 제안 받았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겠다.(마 6:33)’는 답을 했다고 한다. ‘괜찮겠는가?’하는 질문에 ‘이게 최선이고 행복할 것 같다’는 답을 들으며, 역사 속의 이야기가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인 이야기가 성경에 실려 있다. 마태복음 19장 16~22절의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어느 날 한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의 길에 대해 물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계명의 내용 –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스스로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답하는 모습을 보면 이 청년은 더 가치가 있는 인생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 같다. 모든 계명을 지켰다는 그의 모습, 그리고 아직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반문하는 모습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인가?’ ‘무엇이 영원한 것과 이어지는 가치 있는 삶인가?’ 고민하는 우리 마음의 거울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주님은 그 청년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의지하고 있었던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사람마다 의지하는 것은 다를 것이다. 물질적 풍요로움, 지적인 만족, 건강과 행복한 가정, 명예나 사회적 성공, 다양한 종교 활동이나 봉사활동 등등……

우리 선교회를 시작한 찰스 토마스 스터드(C.T. Studd)는 25살이 되던 1885년에 3백만 파운드의 유산과 스포츠 스타의 명예와 일류 대학 졸업자에게 주어진 풍요로운 삶을 뒤로 하고 최선의 인생을 향해 중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53세가 된 1913년 비록 병들고 가난했지만 예수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차서 열대 우림의 아프리카 내지로 떠났다. 그가 영웅이라서 이런 삶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것이 최선이고 거기에 영원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인생을 원하는가? 나에게 무엇이 있던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감추인 보화가 있는 밭을 사라!

글 박경남, 조경아 (한국 WEC 대표)
* 위 글은 RUN지 84호(2018년 봄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