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은 ‘선교사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제자의 삶, 선교적 삶의 핵심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었다.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 학문적 준비, 타문화 훈련이나 제자 훈련, 사역적 준비, 영성, 언어 능력, 전문성, 영혼구원의 열정, 신학적 소양 등 다양한 것들이 고려 대상이 될 것이다. 실제 이런 요소들은 사역을 감당할 때 큰 자산이 된다.

그런데, 당시 우리 부부의 공통된 답은 ‘깨어진 마음’이었다. 다시 말해 나의 죄성과 자아중심적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탄식하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함으로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과 은혜에 대한 감격의 마음, 나아가 열방의 죽어가는 영혼을 보고 탄식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선교는 단순한 기능적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기초로 한 존재적 표현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배우게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셨다(마11:25)’. 사도 바울은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전1:26)’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인 것 같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로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은 선교적 삶의 근간이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자신의 깨어짐을 온전케 하는 십자가의 은혜, 약한데서 예수님으로 인한 능력을 경험하는 것임을 보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 선교사로 지원할 때 전문인으로서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섬길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이런 발상이 참 어리석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선교지에서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실수하고 넘어지고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인가 가진 것 같았지만 우리의 깨어짐이 없기에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었다.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는 사역은 우리 개인의 일이지 주님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대로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불가능함을 고백하였을 때 주님이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되어 주님께서 일하실 때 하나님 나라의 빛이 비추어짐을 보게 되었다. 즉, 우리 개개인의 실존에는 조금의 가능성도 없음을 깨닫는 낮은 곳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가는 선교적 삶이 시작됨을 경험하게 되었다. 깨어진 마음과 십자가를 통한 회복이 선교적 삶의 시작이며 핵심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 모두는 사람마다 사회적, 학문적, 직업적, 영적 배경의 차이가 많이 있다. 더 훈련되면 잘 섬길 것이라는 접근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갖추고 준비했느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깨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열려 있어서 무엇이든지 어디로 가든지 이끄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는가?’ 의 문제인 것 같다.

성육신하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의 부르심을 새롭게 하자. 매일 나 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되돌아 보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이끄는지, 십자가의 은혜가 나를 주장하고 있는지 그 기초에서 다시 출발하는 모든 WEC가족이 되길 소망한다.

글 박경남, 조경아 (한국 WEC 대표)
* 위 글은 RUN지 86호(2018년 가을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