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본부장 칼럼

Column of last directors

역대 본부장 칼럼

어느 새

작성자
WEC
작성일
2011-11-23 16:30
조회
5019
글쓴이 : 유병국
Date : 2007-01-19


어느 새


고등학교 때 내가 가르친 제자 중에 “ 어느 새” 라는 노래를 불러 힛트를 시킨 가수가 있더군요. ‘어느 새’ 하던 그 아이도 어느 새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이 되어 함께 늙어가더군요.

요즘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는 “ 그러고 보니 선교사님이 많이 늙으셨네요” 라는 말입니다. 한 때는 내 스스로도 그 말에 대한 즐거움 같은 느낌도 가졌던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여러 모로 젊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이런 말들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리얼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싸 그러한 지 요즘 와서 얼굴 여기저기에 늘어나는 주름들, 그리고 이전 같지 않은 기력들, 갈수록 침침해지기만 하는 시력, 게다가 나는 어느 새 수십 명의 손자 손녀를 거느린 할아버지가 되었답니다.

우리가 중매를 서서 결혼까지 시킨 커플만 해도 자그마치 열다섯 커플이 넘는 데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나는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됩니다. 하기야 삼촌이나 아저씨로 불러지기를 기대한다는 것도 실은 더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요.


요즘 와서는 한 주가 마치 하루같이 지나갑니다. 아무리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있으려 해도 시간은 저만치 날아만 가버리더군요. 한 주가 시작이 되는가 했는데 어는 덧 또 한 주가 이미 와 있고, 새 달이 오는가 했는데 어느 새 다음 달이 성큼 와 있고 그러네요. 세월의 빠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것도 그만큼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요.


특히 두 달 앞으로 다가 온 큰 딸의 결혼식을 생각하면 더 더욱 이런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첫 열매라며, 금이야 옥이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내 아기라며 야단 했던 내 아가가 어느 새 시집을 가게 되고, 우리 곁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고, 곧 그 아이의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는 그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이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다시 새해가 되었습니다. 올 한 해도 순식간에 지나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내년 초가 되면 틀림없이 덧없이 흘러가버린 올해를 돌아보며 지금처럼 아쉬워하고 허전해하고, 만감이 교차해 하고 있겠지요.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한국 속담이 있더군요. 이렇게 일 할 수 있을 때 몸 사리지 말고

일 하라는 뜻이겠지요. ‘일 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라’는  성경 말씀은 꼭 이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닐 것 같지요. 이렇게 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에 밀려 어느 순간 일 하고 싶어도 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 전에 '세월을 아끼라‘는 말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움직일 수 있고, 오라는 데가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그저 황송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올 해도 저희는 올 인 할 것입니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인양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저 보다 젊은 가족 여러분 !

금방이더군요. 여러분들도 저처럼 흘러가버린 세월을 하염없이 돌아보며 회한과 아쉬움에 빠지는 감정 속에 잠길 날이 도적 같이 올 것이란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주어져 있는 시간들에 최선을 다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진짜 늙기는 늙었나 봅니다)

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행복한 새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