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모본을 따라”
과 거선교사의 정체성을 갖고 전통적 방식으로 행해지던 선교는 21세기 변화된 상황 속에서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비자 획득의 길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선교 현장에서는 명확한 신분과 분명한 사회적 역할을 요구한다.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교지 사회 속으로 들어 갈 수 없고, 전파하는 복음에도 반응하지 않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선교사 선발은 보다 경험 있는 목회자나 전문인 선교사 발굴에 초점을 두면서 선교사 파송 시점이 점점 늦어져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이 되기 전에는 선교지 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선교지 적응과 자녀교육 측면에 부담을 주고 사역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늦은 나이에 가서 현지 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제한을 받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보다 창의적인 방식의 선교사 파송을 고려할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
지난 1월, 중동을 방문할 때의 경험은 이런 현실을 돌파할 단초를 제시하는 것 같다. 이미 십 여 년을 사역한 어느 사역자에게 왜 중동에 와서 오랫동안 사역하고 있는 지 물었다. “고등학교 시절 선교에 대한 부르심을 확인했습니다. 길을 정하기 이전에 선교지를 방문해서 선교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를 고려한 전공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20대 중반에 선교지에 왔습니다.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려 직장인으로 현재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교지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지금은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우리가 한국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가운데 복음의 증인으로서는 것처럼 선교지에서 철저히 현지인과 동화되면서 지위가 낮은 말단 직원에서부터 시작해서 40대가 된 지금 영향력 있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성육신적 사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모델은 비단 비목회자 선교사에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사역자는 한국에서 신학 교육을 마치자마자 20대 말에 바로 사역지로 들어가 현지인 회사에 최직을 하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취직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벌써 10년 이상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직장 동료와 주변의 이웃들에게 복음의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삶을 살고 있었다.
예수님의 성육신도 마찬가지였다. 말구유에 탄생하시고 목수의 아들로 사신 30년, 그리고 공생애와 사역,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타문화권에서 젊은 나이에 낮은 곳에서부터 복음의 산 증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어렵더라도 장기적 계획을 갖고 헌신할 수 있다면 새로운 선교의 세기가 열리고, 돌파가 이루어지지 않은 미복음화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교 헌신자, 선교단체, 교회의 고정관념의 변화와 긴밀한 동역이 필수적이다.
선교 헌신자는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고 처음부터 큰 사역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내려 놓고 겸손히 낮은 곳에서 철저하게 현지인과 동화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또한 비록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런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선교단체는 이런 사역자들을 영적으로 사역적으로 지원하고 돌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정기적인 모임과 현지에서의 사역 훈련을 통해 선교에 계속 집중하도록 도우며, 어떻게 선교사로서 책무를 감당하도록 할 것인지 현지 구조를 준비해야 한다.
교회는 비록 미숙해 보이고 아직 경험이 없어 좌충우돌할 것 같은 20대말 30대초반의 젊은이들을 신뢰하고 파송해야 한다. 흔히 선교사는 전임 사역자라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보다 창의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
18세기 초 세계 선교의 불을 당긴 ‘모라비안 교회’의 성도들ㄹ은 철저히 현지인과 동화하는 전략을 택한 선교 공동체였다. 도자기공으로 농부로 교사로 자신의 직업을 살려서 땅끝으로 나아갔고 교회는 이들을 파송했다. 그 중 석공이었던 한 선교사는 동아프리카에서 석공인 낮은 계층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그 민족 전체를 주님께 이끌었다.
내가 만난 주님을 미전도종족에게 전파하라는 부르심이 있는가? 그렇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철저히 현지인과 하나된 모습이 되어 도전해 보자. 가급적 더 젊은 나이에 나가든지, 나이에 상관없이 이런 젊은이들을 보내든지.
글 박경남, 조경아 (WEC 한국본부 대표)
* 위 글은 RUN지 69호(2014년 여름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