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vol.1 [복음과 선교]

Becoming of Missionaries of WEC (BMW)

선교 헌신자들의 선교 준비를 돕고자 WECer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이 이야기들은 좌충우돌 WEC 선교사로 준비되어가는 어느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하나님 이야기이다. 삶 속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던 주제들이므로 분명 많은 선교 헌신자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Vol. 1 [복음과 선교]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부르심, 성경지식, 타 문화 수용성, 언어, 관계형성, 사역 경험, 전문지식, 후원자관리…… 이러한 많은 준비들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중 가장 필요한 것을 꼽으라면 무엇을 선택 할 수 있을까? 나는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어쩌면 선교에 전부인 것)은 단연 ‘복음’이라고 생각한다. 선교는 복음이 전재되었을 때만 가능한 주제이다. 선교의 내용도, 방법도 모두 ‘복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선교의 부르심을 받은 후 여태 것 선교적인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 시간들 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많이 가르쳐 주신 것은 십자가복음으로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이다. 십자가 복음으로 내게 생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선교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과 생활의 습관을 다듬으셨다. 그리고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들어오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것과 이 복음이 내 삶을 어떻게, 또 얼마나 바꾸었는지 소개하고 싶다.

복음을 만나기 전, 나는 어둠 속에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 보이는 희미한 빛을 안간힘을 다하여 좇아가는 힘겨운 삶을 살았다. 도대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란 건 뭘까? 교회를 20년 넘게 다녔어도 복음이 뭔지 정확하게 몰랐다. 예수님께서 수가동네의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말씀하신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한 번도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셔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반복적으로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속에서 솟아 흘러 나오는 샘물은커녕 늘 밖에서 물을 길어다 퍼 나르기 바쁘다. ‘왜 나는 죄로부터 자유 하지 못할까?’ ‘어쩜 이렇게 나를 포장하기를 잘 할까?’ ‘겉과 속이 다른 이런 가면 무도회 하듯 사는 삶은 정말 진저리 넌더리가 난다!’ 성경을 통독하기도 여러 차례, 그 해갈을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더한 갈증을 느끼기 일쑤였다. 쌓이는 성경지식들은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즈음 교회에서 선교 수련회를 했다.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매우 흥미 있는 제안을 했다. 선교 수련회 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복음에 대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여 얘기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 수련회에 참여했다. 결과부터 이야기 하자면, ‘대 실망’이었다. 복음인데 내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복음이었다. 늘 들었었던, 다 알고 있던 그런 말씀, 그러나 내 삶은 변화시키지 못하는 그런 말씀이었다. 이토록 목마름을 가지고 진심으로 복음을 알려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목마름은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신학 대학원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거기에 가면 뭔가 해결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만약 신대원에서도 복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다.

내가 지원하려 했던 신학교는 장로교(통합) 신학교로 광나루에 있었다. 자주 학교를 찾아가, 입시 준비 모임에도 참여했다. 성경을 배우고 암송하고 하면 할 수록,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입시 준비를 위한 성경 공부라 할 지라도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갔다. 오죽 기뻤으면 하루 종일,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성경을 읽었을까! 마치 수동펌프를 처음 작동시키기 위해 마중 물을 넣듯이, 이 성경 공부를 통해 이제는 속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맛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내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던 나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신앙인이라 자부했었다. 한 80점짜리는 되어서 나머지 20점은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완전히 0점짜리였다. 아니, 0점을 지나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철저한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 하나님 대신 앉아있는 자아 숭배자! 옛 자아의 허상을 붙들고 조종하려 드는 사단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자! 철저하게 망가진 옛 자아의 허상을 붙들고 그게 나인 줄 알고 살아왔던, 말라비틀어져 가는 가련한 영혼이 하나님의 엄위하신 말씀 앞에 조명되기 시작했다.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절망이었다. 정말 끝이었다. 이대로 하루하루 더 살아가다가는 더 큰 죄만 지을 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만 숨을 거두어 달라고 사정하기도 하였다.

그 처절한 절망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보니 십자가가 보였다. 그 십자가는 이전에 내가 알던 십자가가 아니었다. 내가 전에 알던 십자가는 나를 대신해서 예수께서 죽으신 십자가였는데, 다시 보니 그 자리에 나도 예수와 함께 달려 죽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나의 옛사람이 이미 죽음에 넘기었다니! 내가 여태껏 나인 줄 알고 살았던 것은 옛 자아의 허상이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하며,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그리고 내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깊은 내면에서 샘 솟는 생명수가 터져 나왔다. 상황과 환경에 의지하던 내가, 인정과 평판에 마음이 엎칠락 뒤칠락 하던 내가, 나를 나의 주인으로 모셔 놓고 살던 내가 죽었고, 내 안에 오직 예수께서 사시기 시작했다. 주님이면 충분했고, 그 분으로 만족했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그 분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살리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로 세상에 붙들려 있던 나를 자유 하게 하셨다! 그리고 원래 창조하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게 하셨다.

신대원에 가려고 했던 나의 동기가 십자가 앞에서 드러났다.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아닌, 마음 속에 깊숙이 숨겨둔 진짜 동기는 ‘나를 높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나님보다도 사람들의 평판을 두려워하던 나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 결국 끝까지 포기하기 어려웠던 신대원 준비를 중단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선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선교 헌신자들이 선교준비를 위해 신대원에 진학하는 것에 대한 의견은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나는 굉장히 사람을 의지하거나 돈을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로 결심했다. 죽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먹고 마시는 작은 일들에 이르기까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결혼하고 아내와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문자 그대로 순종하기로 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낳고 기른다.’는 원칙을 세웠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 결혼한지 8년이 되었는데 매년 임신과 출산(혹은 유산)을 통하여, 현재는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세 번의 가슴 아픈 유산이 있었는데, 이 일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애통해하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었다. 또한 이전에는 늘 재정이 어떠한 결정에 중요한 가치를 차지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면 얼마의 재정이 든다 해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로 믿고 따르기로 결정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약속이 우리 삶 안에 실제인지 보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를 실험해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교 헌신자와 선교 후보생으로 살았던 7년 동안 신실하게 공급해 주셨고,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하나님의 채우심을 매일 경험한다. 전에는 다른 대안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삶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때로는 광신도들의 경건치 못한 신비주의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삶이 얼마나 안전한지 여러 믿음의 선배들의 삶과 나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재정을 통해 배운 믿음의 이야기는 다음에 더 나누기로 하겠다.)

이렇듯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대한 첫 번째 증거를 대라고 한다면 단언컨대 ‘나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진정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였는가?’라고 하겠다. 십자가복음으로,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셨다면, 우리는 선교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존 파이퍼가 말 한 것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자로 쓰실 것이다. 나 하나를 온전히 바꿀 수 있는 복음이라면, 열방의 어느 누구라도 진정한 내면의 변화를 경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당신은 만족하고 있는가? 열방의 수많은 필요들 앞에 당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말 할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선교사’이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예수의 길을 따르는 무리라면 선교는 이제 더 이상 부담스러운 일도, 희생을 강요하는 일도 아니다. 선교는 그 자체가 기쁨이다. 왜냐하면 선교를 통해 열방이 주님을 예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그토록 보기 원하시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예배! 주님은 이 영광스러운 부르심으로 당신을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르고 계심을 믿는가? 그렇다면 더욱 복음으로 돌아가자!

글쓴이: 전주홍 선교사/ 한국본부 동원팀장

(전주홍 선교사는 20대에 선교 동원가로서 부르심을 받았다. 아내 최주연 선교사와 함께 4년 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WEC 선교훈련을 받았다. 호주에서 마약, 알코올 중독자 갱생 사역에 참여 했으며, 지역교회와 함께 노숙자 돌봄 사역을 했다. 또한 호주 현지 교회인 St. Peter’s church에서 찬양인도와 설교로 섬겼다. 엘림, 누림, 드림, 아림 네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