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보라! “

* 이글은 5월 정기기도회 말씀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 창22장2절]

가정의 달 5월에 열리는 기도회에서는 지난 수 년 동안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선교사들의 가정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저는 어려서 과수원을 하시는 할아버지와 함께 산속 외딴 집에 살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반복적으로 많이 읽은 책이 여러 권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리스로마 신화였습니다. 그 책의 등장 인물 중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킬레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신비의 샘물에 목욕을 시켰는데, 엄마가 발목을 잡아서 발목을 제외한 모든 몸은 불사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용사로서 이름을 날리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마침내 적군은 비밀을 알게 되어 가장 약한 부분인 발꿈치를 쏘아 결국 죽고 말았다는 신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어떤 사람의 취약점을 아킬레스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이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고 결단하려고 할 때 이 아킬레스건처럼 헌신을 주저하게 만들어 헌신하지 못하게 하거나, 헌신은 하였으되 다시 걸려 넘어지고 헌신의 길에서 돌아서게 만드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본문의 아브라함도 아킬레스건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후손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창12장에서 땅과 후손과 복의 근원이 되는 약속을 받고 13장과 15장에서 반복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확증을 받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고, 이는 아브라함 가족의 문제와 세계사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되고 맙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이런 절박한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 75세때 약속을 받았지만 85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 부부, 그들의 최후의 선택처럼 보였던 하갈과 이스마엘, 그리고 99세까지의 기다림. 그의 전 생애의 고민은 자식의 문제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이삭을 기적적으로 낳은 아브라함, 그러나, 기쁨도 잠시일 뿐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만일 제가 아브라함이었다면 황당했을 것입니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린가? 약속을 어기시나요?’ 하고 반문하였을 것이고, 따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 가나안 지방에서는 자식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가진 족속들도 있었지만 아브라함 편에서는 어렵사리 낳은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은 치명적인 사건이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에게 자식의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은 사형선고와 같기 때문이지요.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 WEC에 인터뷰를 하러 왔을 때 당시 본부장이셨던 류보인 선교사님은 ‘애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주께 맡기고 가야지요’ 라고 대답했더니, ‘흔히, 믿음으로 맡긴다고 생각하면서 애들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애들이 두분 생각하는 것처럼 잘 자라지 않을 때도 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우리는 ‘주를 신뢰해야지요!’라고 답하고는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선교지에서 아이들 교육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없는 곳에서 우리나라 학교의 분교처럼 선생님 한분이 가르치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학습 능력 향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낙심하기도 했었습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한국으로 되돌아 가야 하는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우리를 다시 잡아준 것은 ‘아이들도 하나님께서 이끄시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을 알고 자란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됩니다 라고 고백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헤쳐 나와야 했습니다.
아마 만약 그 때 아이들 문제로 되돌아 왔다면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가운데는 이런 상황 가운데 있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인 아이들을 기숙사에 떼어 놓을 수 밖에 없었고 눈물 어린 기도로 주님만을 신뢰하며 사는 선교사들, 학교와 선교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경증이 나타난 아이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던 동역자들, 부모님이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교지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이들, 육신의 질병으로 수술을 받고 고통을 받았지만 다시 선교지 영혼을 품고 나아가는 이들, 가족을 잃고 순교하기까지 핍박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이들, 모처럼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왔지만 머물 곳이 없어서 떠도는 선교사들, 갑자기 파송이 중단되어 발을 구르는 사람들.

그들은 오늘도 주를 따르는 길에서 만나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부르심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묵묵히 좁은 길을 걸으며 이렇게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나는 오직 주님만을 따르리라!’ ‘내 스스로의 인생에 초점 맞추고 자기연민으로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의 십자가의 길로 걸어 가리라!’ 라고 말하며 믿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WEC가족 여러분!
우리가 더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자로서 선교사로서 살아가려고 하는데 발목을 잡는 것은 무엇이 있는 지 생각해 봅시다. 자아상의 문제, 과거의 상처나 실패한 사역으로부터의 쓴뿌리, 사역을 통해 내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 자녀교육, 결혼문제,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 재정적으로 조금 더 안정적이 되는 것,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갈채를 얻고자 하는 마음. 이처럼 우리 각자의 처지와 과거의 경험과 상황 가운데 만들어진 ‘우리들의 이삭’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나, 선교회나, 사역 현장에서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나의 이삭’ 을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드림으로 새로 얻었던 것처럼 우리의 ‘이삭’을 십자가 앞에 드리고 주님이 주시는 ‘새이삭’으로 바꾸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히12:1~2절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문제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까지 헌신했는데’라며 자기연민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부르심의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예수님과 하나되어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갑시다.

“예수를 바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