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심쿵연애실화 #선교하는연인들을위해
4. <007 작전> (작전 코드명: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그때부터 우리는 비밀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연애활동을 시작했다. 데이트를 하다가 교회를 갈 때면 내가 버스 정류장을 한정거장 먼저 내려 시차를 두고 교회에 도착하곤 했다. 청년예배를 드릴 때도 항상 서로 멀리 떨어져서 앉았고, 서로가 섬기는 영역에 집중하려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데이트 할 때는 거의 서울이나 인근의 다른 지역으로 가서 했다. 한 번은 유승호가 초딩 일 때 찍은 ‘집으로’라는 영화를 보러 극장엘 갔는데 그것 역시 다른 도시에 있는 아주 작은 1관 짜리 소극장에 가서 봤다. 설마 이런곳에 아는 사람이 있으랴 했는데, 웬걸? 거기에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잔잔한 감동을 간직한채 극장을 나서고 있는데,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는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첩보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 장면을 보는 듯 스릴감이 넘쳤고, 실제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렸다. 다행히 그 분은 애써 우리를 못 본 척해 주셨고 우리의 첩보활동은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첩보영화를 찍은 데는 그때 당시 한창 탐독했던 죠슈아 헤리스의 ‘No dating’과 ‘Yes dating'(두란노) 그리고 죠이스 허기트가 쓴 ‘데이트와 사랑의 미학'(IVP)이라는 책의 영향이 컸다. 둘의 관계만을 생각 하기 보다는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생각했고, 그리고 우리 둘의 관계도 공동체 안에서 점검 받으며 건강한 관계로 성장하기 원해서였다. 이러한 007 작전에도 불구하고 매의 눈을 가진 청년부 목사님께 우리 둘의 관계를 걸리고(?) 말았다. 목사님께서는 이미 둘을 떼어 놓는 것은 물 건너 갔구나 싶으셨는지 교제하는 청춘 남녀로서 꼭 지켜야 할 사항들을 말씀하시며, 잘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교제를 시작한 우리는 정확히 일년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우리는 공통점이 정말 많았다. 취향도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하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사람들 사이에 호 불호가 분명한 민트 초콜릿을 좋아했다. 31가지 맛이 넘는 아이스크림 중에 왜 하필 그것일까 생각하며 운명적인 만남임을 직감했다. MBTI 마저도 비슷해서 나는 ENFP이고 그녀는 ENFJ였다. 그런데 이렇게 잘 통하던 우리가 교제한지 딱 일년이 지나자 의견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건 뭐 이틀이 멀다 하고 싸웠던 것 같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 바쳐 싸웠다. 나중에는 ‘신용카드는 빚지는 것이기 때문에 쓰면 안 된다’ vs. ‘혜택이 많고 과소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안되냐’는 100분 토론 주제를 가지고 100 시간씩 싸우기도 했다. 정말 지겹도록 싸우고 또 싸웠는데도 안 헤어진 거 보면 희한하다.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밖에 우리의 사랑을 증명할 수 없는 건가? 하하하)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