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동 여섯식구 이야기 (8. 번갯불에 콩을 볶다.)

#본격심쿵연애실화 #선교하는연인들을위해

8. 번갯불에 콩을 볶다.

한 달 만에 준비한 결혼이니 웬만한 것들은 생략한다고 해도 부모님 상견례부터 웨딩 촬영, 예물, 청첩장, 결혼식장, 신혼여행 등 모든 준비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신혼 집은 아내가 장인어른과 함께 살던 집에 내가 들어가 살기로 했는데, 장인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우리가 모시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싱크대만 새로 갈았고, 나머지 가전제품들, 세탁기,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등은 쓰던 것을 그대로 썼다. 장롱은 내가 쓰던 것을 가져왔고, 침대는 교회 어떤 분께서 내놓으신다고 하기에 가져다 썼다. 비록 중고 침대였지만 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대부분의 것을 생략하고 정말 의미 있는 것들만 채우려고 했다. 우리는 앞으로 선교사로 살 것이고, 그러니 어느 누구보다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좀 유난히 궁상스럽게 신혼을 준비했던 것 같다. 대부분 아내와 상의하고 동의를 얻어 준비했지만 사실 내가 가진 가치를 아내에게 강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이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펼치는 ‘꿈의 무대’가 아니라 서로간에 합의를 이루는 ‘평화 협정 체결장’이라는 것을 결혼을 하고 나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연애기간이 길었던 우리는 남녀관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미 겪었던 터라 뭐 그리 대단하게 의견충돌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부모님도 우리를 많이 이해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의 많은 부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 결혼이라는 건 정말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거로구나’라고 조금씩 배워갔다.

우리는 결혼 할 즈음부터 함께 국내의 한 선교단체를 통해 15주 과정의 선교훈련을 시작했고, 훈련을 받는 도중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은 토요일이어서 첫 날 밤을 집 근처에서 보내고, 다음 날 모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월요일 마다 하는 선교 훈련이 밤 10시에 끝나, 훈련을 마치고 야간 우등버스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큐슈를 기차 여행하는 코스였는데 자유여행으로 갔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아내는 신혼여행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남태평양 열대 섬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내가 ‘선교지로 가면 그런 열대 섬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으니 일본으로 가자’고 아내를 꼬셨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 막연한 생각으로 선교지는 꼭 정글이나 섬마을 풍경일 것만 같았던 모양이다. 그래, 사실 신혼 여행지가 어디인 게 무슨 상관이랴. 나는 지금 꿈에 그리던 그녀와 함께 있는데. 제 아무리 여행지에 볼거리가 많고 먹을 거리가 많아도, 호텔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고 싶지도 않을 만큼 그냥 아내랑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비록 우리 연애기간이 길었지만 부부로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으니 맘 놓고 둘만의 로맨스를 즐겼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갔고, 그저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벌써 한국으로 돌아오는 배 안이었다. 신혼 여행이란 마치 분명히 존재하는데 실제로는 한 번도 눈으로 보지 못한 ‘허니 버터 칩’처럼, 분명히 신혼여행을 갔다 왔는데 마치 그냥 기분 좋은 꿈을 꾼 것만 같이 느껴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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