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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Goodbye, 순이
우리 부부는 선교훈련 막바지에 3주간 비전 트립을 다녀와야 했다. 나는 중앙아시아로, 아내는 서남아시아로 가게 되었고 각자 팀 안에서 성실하게 준비했다. 그 동안 교회를 통해 몇 차례 함께 선교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이 번 여행은 의미나 각오가 남달랐다.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후에 떠나는 여행이라 그랬는지 교회를 통해서 갔던 다른 여느 단기선교여행 보다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을 열흘 앞 둔 시점에서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 비전 트립을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도했다. 타이밍이라는 게 참 묘했다. 아예 한 달 전에 아이가 생기거나 아니면 비전 트립을 다녀와서 아이가 생겼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이 시점일까? 우리 부부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하나님께 계속 여쭈고 잠잠히 듣는 시간을 가졌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과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열방을 향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부어주셨고, 선교지의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분명하게 주셨다. 그리고 아내와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그래, 끝까지 순종해보자.”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순종이었다. 우리는 아기를 ‘순이’라고 불렀는데, ‘Soon(곧)’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라는 의미로 그렇게 태명을 지었다.
조심스럽게 우리는 각자의 부르심을 확인하며 비전 트립을 떠났고, 3주 후에 인천공항에서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3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시간이었고, 나름대로 선교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무용담(?)을 들려주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귀국 후 산부인과에 검진을 하러 갔다. 초음파 검사 후 산부인과 전문의는 태아의 발육이 좀 늦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주차인 태아의 심장이 아직 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아내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얼른 산부인과 병원을 갔다. 마침 우리 담당의사가 없어 다른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계류유산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나는 그 의사가 오진을 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하신 말씀과 약속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잘 못 들은 것인가?’ 마음 속 요동치는 혼란 속에서 의사는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아줬다. 눈물이 앞을 가리며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감당이 안됐다. 계속되는 자책과 슬픈 감정들이 올라왔다. 우리 부부가 너무 믿음 믿음 하다가 순이에게 어려움을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고 아프게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계류유산은 외부충격으로 유산되었다기 보다는 자궁의 해부학적인 구조이상, 내분비 장애, 염색체 이상, 면역학적인 이상 등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는 너무 자책하지 말고 마음을 잘 추스르라고 위로해 주셨다. 순이의 존재를 발견한지 한 달 남짓, 새 생명의 신비에 놀라며 만날 날을 기다리던 설렘의 시간들을 지우기엔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아이를 잃은 슬픔도 이렇게 큰데, 자식을 잃어 버린 부모의 마음은 오죽하랴.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아픈 것인가? 순이야!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