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우 리 부부와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핍박을 받아 주님 품으로 떠난 이들이 상당수 있다. 척박한 선교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족처럼 살았던 이들이었기에 문득문득 함께 보냈던 날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특히, 남겨진 이들이 했던 이야기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한다.
“어쩌면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저는 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계속 섬길 것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겠으며 계속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겠다는 순교자 가족들의 고백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실제로 그들은 그 고백처럼 섬기던 나라에 다시 돌아갔고, 구호 기금을 마련해 계속 사랑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역사 속에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수많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우리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셨고, 제자들은 그 길을 따름으로 증인이 되었다. 제자들에게 믿음의 길은 순교의 길이었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핍박자들을 대하며 복음을 살았던 이들을 그 세대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십자가의 사랑은 모든 민족을 향해 도도한 물결이 되어 퍼져 나갔다.
15년 전 선교 지망생으로 훈련을 받을 때 만난 자매의 고백도 비슷했다. 선교사 자녀로서 아버지를 현지인들의 손에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그는 아버지가 택했던 삶을 자신도 살고자 선교회에 왔었다. “이제는 괜찮냐?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냐?”고 묻는 우리들에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많이 힘든 날들이었고 하나님께 질문도 많이 했었는데, 아직 답을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다르지 않은 나를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셨고, 모든 이들은 그 사랑을 알아야 함을 깨닫고 여기 왔습니다.” 그는 아직도 일선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비단 선교사들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밀리에 신앙 생활을 했던 한 형제는 이렇게 고백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만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신앙 생활 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처럼 영원한 천국에의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이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분한 인생이 무엇인지를 맛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비슷한 고백을 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그래서 그는 매를 맞고 돌에 맞고 파선하는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자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평생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 살고 한 번은 죽는다. 이 유일한 인생을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와 합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 부활의 권능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WEC의 모든 가족들이 되길 소망한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는 질문에 “주님 때문입니다”라는 고백이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우리의 찬양이 되길 그려 본다.
글 박경남, 조경아 (WEC 한국본부 대표)
* 위 글은 RUN지 80호(2017년 봄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