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완성, 바로 그날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선교가 완성되는 그날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날을 위해 이제까지 우리 WEC 선교회를 비롯한 모든 선교회와 교회들은 부단한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 결과로 교회가 탄생하고, 어둠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 주의 복음을 믿게 되는 역사를 경험했다.

오늘날도 여전히 이러한 어려움이 선교의 완성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찾아온다. 우리는 복음으로 인해 수치스러운 일, 고통스러운 일, 괴로운 일들을 만나게 될 때면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하나님, 왜 이런 수치와 고통,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찾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힘겹게 할까요?” 얼마 전 선교지에서 어느 선교사가 피살되었다는 아픈 소식을 들었다. 사건의 상황과 이유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이 고통의 시간들을 대면하고 있자니 우리의 마음이 너무 슬퍼졌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선교가 완성되고 새 예루살렘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위하는 것이다. 바로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의 삶이다. 이 새 예루살렘은 너무나 멋지고 화려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신비한 모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성의 모든 것들은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의 것이다. 특별히 그 성에 있다는 12개의 ‘진주문’이 그렇다. 성경에 의하면 진주조개는 부정한 동물 중 하나이다. (신명기 14: 10) 그런데 천국의 문이 바로 이 진주조개의 부산물인 진주로 되어있다고 한다. 물론 풍유적인 것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부정한 동물인 조개에서 나온 부산물이 천국의 12문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는 심오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천국으로 가는 문,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선교의 완성의 문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 고통과 수치, 어떻게 보면 부정한 우리의 인생이 진주조개로 비유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진주조개가 원치 않는 이물질을 받아 고통 가운데 진주를 만들어 내듯 우리의 삶도 고통을 통해 천국의 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선교와 선교의 완성, 그 사이에서 우리는 그 ‘진주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시편 100편 4절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Mission; 사명)와 이를 완성하는 그 사이에서 고통과 수치로 인하여 불평과 불만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찬양함으로, 감사함으로 그 아름답고 영롱한 ‘진주문’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선교를 감당할 때 고통이 있고, 수치가 우리를 뒤따라오는 것 같지만, 그 순간에서도 찬양과 감사로 주님께 올려 드릴 때에 선교의 완성을 향한 마지막 자락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그날을 기다리며 외쳐 본다. “Maranatha(마라타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글 김재형·강경화 (한국 WEC 대표)

위 글은 RUN지 91호(2020년 겨울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