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우리는 코로나19와 함께 엄청난 한 해를 시작했다.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 가운데 여름을 보내고 이제는 가을을 맞이했다. 마치 한 해가 멈추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정말 큰 변화의 시기인 것 같다. 앞날이 불분명하고, 다시 일상을 회복한다고 할지라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이 변화의 시기가 아주 길고 크게 느껴진다. 이런 큰 변화의 시기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일까?

이 시기의 변화가 우선적으로 일어나는 곳은 우리 내면이다. 판데믹(Pandemic)이란 것이 외부적인 변화에 의해서 시작은 되었지만 결국 변화를 감지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우리 내면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이다.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때에 익숙한 이전의 방법과 행동들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들에 편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이제 우리 내면에서 깊이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봄부터 지금까지 표면적인 방법과 형태의 변화에 익숙해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 내면을 잘 돌아보아, 새로운 변화를 깊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선교가 지금까지 양적/물적 선교를 잘 해 왔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는 사역을 크게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선교 현장의 한 영혼들의 변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변화의 시기가 그냥 물리적인 시간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변화를 우리 삶과 선교 사역의 과정(process)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국에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란 믿음이 이 시간을 잘 견뎌 나갈 수 있게 하고 지금 우리는 그 과정의 중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에 굳이 경쟁하거나 우리의 계획대로 빨리 진행되지 않아도 조급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런 마음은 우리를 더 낙담하게 할 뿐이다. 뭔가를 할 수 없어서 답답하게 여길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아시고 우리에게 그의 뜻을 보여 주시길 원하신다. 또한 우리가 보지 못할지라도 그 분은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조급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필자의 사무실 방에는 동양란 화분 하나가 있다. 8월 초 더운 여름 외부강의로 한 주간을 비우고 돌아와 보니 수줍은 듯 곱게 핀 몇 송이의 동양란 꽃들이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어, 지난주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는데, 사무실로 돌아온 나를 이렇게 이쁘게 맞이해 주는구나” 작았지만 귀한 동양란 꽃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요란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았지만, 그 고요 속에 주님은 일하고 계셨고 그런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우리의 선교,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것들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또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또는 하지 않는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지금 이 큰 변화의 시기 안에서 익숙하지 않는 상황이 상당히 불편하게 여겨질지라도 이 불편함이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면 이 변화가 우리에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변화가 일어날 때에 이전의 구습이나 찌꺼기 같은 것들이 제하여 져서 우리의 선교를 더 명확하게 정의하며 실행할 수 있게 한다면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이것은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여시며, 하나님 나라가 더 확장되어 가는 과정 안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는 모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글 김재형·강경화 (한국 WEC 대표)

위 글은 RUN지 94호(2020년 가을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