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동 여섯식구 이야기 (12. “오늘은 내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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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늘은 내 얘기 좀 하자.”

첫 아기였던 순이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떠나 보낸 뒤에도 하나님의 훈련은 계속 되었다. 머리로만 알던 전심의 순종이라는 게 무엇인지 삶으로 경험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기쁨의 시간, 두 번째 임신을 했다. 우리는 아이의 태명을 ‘소망’이라고 지어 부르며 순도 100%의 믿음을 가르쳐 주신 그 날의 감격을 늘 상기하곤 했다. 드디어 소망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밤 새 두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수유하고, 기저귀 갈아주고, 씻기고, 재우고 하는 것이 아내와 내게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지만, 새로운 생명이 우리 부부를 통해 태어난 것은 신비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가 태어난 지 45일 째 되었을 때 일이다. 아내는 여느 때처럼 집에서 애를 보고 있었고 나는 오후에 일을 하러 나갔다. 그 당시 나는 중고등학생 수학 과외를 하고 있었다. 운전을 하고 공부방으로 향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가 이상했다. 깔깔 대고 크게 웃으면서 뭐라고 소리를 막 지르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잘 들어보니 웃는 게 아니라 우는 소리였다. 완전히 실성한 여자의 울음 소리였다.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 할 수 있었다. 아내가 잠시 거실에 나와 빨래를 개키는 동안 자고 있는 아기를 침대 위에 잘 올려 놓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애가 바닥으로 쿵 떨어진 것이었다. 쿵 소리에 놀라서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애는 바닥에 떨어져있고, 아기가 잘 울지도 않고 눈동자가 위로 돌아가서 이상하다는 것이다. 상황을 듣는 순간 뇌를 다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방으로 가서 오늘 일을 할 수 없으니 하루만 쉬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다시 미친 듯이 운전을 해서 아내와 아기를 차에 태웠다. 시내에 있는 큰 소아과로 향했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퇴근시간이라 길이 많이 막혔다. 비상등을 켜고 병원으로 황급히 차를 몰았다.

막상 소아과에 도착하니 소아과에는 응급실이 없었다. 안내 직원이 진료시간이 끝났다고 하며 다른 종합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너무 태연하게 말하는 직원의 태도가 못 마땅해 욕 한 바가지를 퍼붓고 가고 싶었으나 그럴 시간 조차 아까웠다. 다시 차를 돌려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도착하자 마자 우선 머리 X-ray 사진을 찍었다. 응급실 당직 의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소아과 전문의가 아니라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사진 결과로는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니 일단 집에 돌아가서 계속 잘 먹지 못하고 울지도 않고 하면 다시 한 번 병원에 데려 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완전히 폭발해 버렸다. “아니, 애를 집에 데려갔다가 이상하면 다시 오라니, 그래서 아기에게 정말 이상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 질 거냐!” 하면서 막 소리를 질렀고, 의사는 이런 막무가내 환자 보호자들에게 질렸다는 듯이 별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아기를 안고 응급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의사의 말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아기를 안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새미한 음성이 들렸다.  ‘주홍아, 너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네, 주님.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요.’ 평소 같았으면 이 정도 대화가 오고 갔을 때 주님은 ‘그래 얼마나 힘들었니? 나는 너의 산성이요 바위란다.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아라’ 하시며 위로해 주셨을 텐데 그 날은 좀 달랐다. ‘그래? 그랬구나. 그런데 오늘은 네 얘기 말고, 내 얘기 좀 하자.’라고 하시며 ‘네가 오늘 네 사랑하는 딸이 다쳐서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또 아이의 생명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고 초점을 집중하여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오늘 나의 자녀들은 영원한 죽음 가운데 내 몰리고 있구나. 나의 마음은 어떻겠니?’ 하나님께서 더 말씀하지 않으셔도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지 알 수 있었다. ‘네, 주님. 그렇군요. 아버지의 마음을 한 만 분의 일 쯤 헤아릴 수 있을것 같아요. 네, 주님. 제가 열방의 땅끝으로 가겠습니다. 애끓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생명줄 던지러 열방으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주님을 예배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곳 어디든 나를 보내소서.’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2:16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