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동 여섯식구 이야기 (15. 복덕방에서 온 그대)

15. 복덕방에서 온 그대

2009년 1월 12일 월요일, 선교사 훈련대학이 개강을 하기 한 달 전, 우리가 1년 치 학비를 보내야 하는 마지막 날 이었다. 그 날까지 학비 송금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학교에서도 더 이상 우리를 기다려 줄 수 없고, 비자신청도 늦어 지기 때문에 그 해에는 선교훈련을 나갈 수 없게 된다. 한 해를 더 기다리든지 아니면, 이 길로의 부르심이 아닌 줄 알고 멈추던지. 이미 우리는 지난 2008년 한 해를 출산과 영어 시험 준비로 보냈다. 한 해를 더 기다린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위 분들은 계속 우리에게 질문했다. “정말 갈 수 있는 거니?”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는 대답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정말 앞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가라고 하셨고 약속의 말씀도 주셨다. 물론,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가겠다고 최종 답변을 드렸지만, 그래도 이 모든 일에 책임은 주님께 있다. ‘가라고 하셨으면 보내 주셔야지, 왜 가라고만 하시고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이런 의문이 마음에 생길 때마다 성경을 펼쳤다. 출애굽을 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신 분께서도 하나님이시고, 홍해를 가르신 분께서도 하나님이시며,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신 분께서도 하나님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끄신다. 물론 한국이 애굽이거나, 선교사 훈련대학이 가나안은 아니었다. 나도 물론 모세가 아니었고. 그러나 어쨌든 성경을 보고 나면 말할 수 없는 평안함과 자신감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사람의 생각과 방법을 뛰어넘기 때문이었다.

학비 송금이 2 주 정도 남았을 때 기도원에 들어갔다. 3일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시편 27편 4절의 말씀을 해 주셨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다윗만큼 평생 고난이 많았던 사람이 또 있었을 까 싶을 만큼 그는 고난으로 단련이 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시는 것을 보면 얼마나 혹독하게 다루시는지 그의 속 사람이 아이언 맨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그런 고난 가운데 늘 주님을 바라보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고백의 한 마디가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 나도 내 생을 다 바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사모하게 하실 것을 바라보리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는 이전과 분명히 달라졌다. 나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간절히 찾던 시간들을 지나,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기 시작했다. 주님이 주실 그 무엇이 아니라, 주님 자체를 갈망하고 사모하게 되었다. 소용돌이 칠 수 있는 상황들 가운데 내면에는 한 없는 평안이 찾아왔다. 그렇게 2주가 훌떡 지나갔다. 공인중개사에서는 계속 연락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계심을 신뢰했다. 드디어 1월 12일이 되었다. 학비 송금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 이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자 마자 이부자리에 그대로 앉아 기도를 했다. ‘하나님, 오늘 입니다. 잊지 않으셨죠?’ 바쁘신 주님께서 혹시라도 잊으셨을까 봐 살짝 귀띔을 해드렸다. 그렇게 아침 먹는 것도 잊고 계속 앉아서 오전 내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핸드폰 전화 벨이 울렸다. 공인중개사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떤 사람이 전세집을 찾고 있는데 한 번 와서 얘기 해 보겠냐는 것이었다. 전세?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우리는 집을 팔고 갈 생각뿐이었지 전세를 놓고 간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전세를 구한 다는 사람이 있다는게 우리에게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었던 것은 그 날 설령 계약이 이루어 진다고 해도 계약한 날은 계약금 밖에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약금이라고 해봐야 비행기 표 살 돈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 적은 액수였기 때문에 마음에 전혀 감동이 없었다. 어쨌든 집을 구한 다는 그 사람을 만나러 복덕방으로 향했다. 만나보니 나보다 나이도 어린 혼자 사는 총각이었다. 그는 최근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수술을 했다며 내게 윗도리를 들어올려 커다란 수술 자국을 보여 줬다. 그는 몸도 회복해야 하고 해서 햇빛이 잘 드는 집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우리 집 안방은 햇빛이 잘 드는 편이었지만, 그다지 그 사람이 이렇게 급하게 우리 집을 얻어야 할 만한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하겠다고 했다. 전세 금의 10분의 1을 계약금으로 받았다. 계약을 하고 나서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무슨 정신이었는지 초면이었던 그 분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 초면에 실례지만 혹시 오늘 계약금뿐 아니라 전세금을 다 주실 수는 없나요?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외투 안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이리저리 번호를 눌렀다. 질문을 했으면 대답을 해 주면 좋으련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핸드폰만 누르고 있었다. 그러고는 내게 하는 말이 “지금 송금했으니까 한 번 확인해 보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믿을 수가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바로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ATM에 카드를 꽂아 넣었다. ATM 화면으로 보이는 내 은행계좌에는 1년치 학비와 비행기표를 살 수 있는 돈이 들어있었다. 그 길로 바로 외환 송금 창구로 가 선교사 훈련 학교에 송금을 했다. 외환 송금을 다하는 데는 불과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아니 길게는 1년 넘게 고민해 오던 문제가 단 15분 만에 해결된 것이다. 은행 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정말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결코 선교사 훈련 대학의 학비를 드디어 송금했다는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 눈물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그저 나의 경험과 상식 안에 가둬두고 얼마나 그 하나님을 작게 생각해 왔는지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끝없는 우주와 같은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단지 우주 정거장에 첫 발을 내딛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 비자가 나오고 가족과 교회 식구들과 잠시 이별을 해야 했다. 비록 우리가 모 교회의 협력선교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선교훈련을 떠날 때 꽤 큰 액수의 후원금을 주셨고, 우리가 이 메일로 보낸 기도 편지도 정성스레 출력해서 게시판에 걸어주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많은 분들의 우려와 축복 속에 호주에 있는 선교사 훈련대학으로 향할 수 있었다. 주님이면 충분하다! -시즌 1 끝-

그동안 <마천동 여섯식구 이야기 시즌 1>을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시즌 1 에서는 선교훈련을 받기까지의 우여곡절 일상들을 담아 보았습니다. 이제 시즌 2 에서는 선교훈련을 받으며 있었던 여러가지 겁나게 즐거운 이야기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시즌2에서 다시 만나요.